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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대표하는데 꿀릴 순 없었어요”
19살 차광환이 홈리스 월드컵에 참가했던
2023년 여름과 그 후, 미니 다큐 ‘루저’
지난달 10일 일본 다양성컵에서 공을 몰고 있는 차광환. 조윤상 피디

차광환(19)은 축구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유소년 축구 클럽에서 공을 찼다. 재능도 있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프로축구팀 울산 HD FC의 유소년팀인 현대중학교 입단 테스트를 보기도 했다.

광환은 입단 테스트에서 꽤 잘했다. ‘꼬깔콘 드리블’과 체력 테스트 모두 결과가 괜찮았다. 하지만 어린 광환의 발목에 돈이라는 태클이 거칠게 들어왔다. 숙소비, 식비, 전지훈련비…. 엘리트 축구 선수가 되려면 온갖 이름표가 달린 돈이 필요했다. 엄두가 안 났다. “‘축구를 못하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저한테 누가 ‘너 커서 뭐할 거냐’ 물어보면 그냥 ‘배달이요’라고 이야기했어요.”

꿈에서 멀어진 광환은 경로를 이탈해 망망대해에서 표류했다.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나 이혼 가정에서 자랐고, 가정폭력으로 얼룩진 유년 시절을 보낸 광환이 잡을 수 있는 튜브는 없었다. 나쁜 형들과 어울리며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다니다가 걸리기도 했다. 소년분류심사원에 들어갔고, 재판에서 6호 처분을 받았다. 이후 ‘6호 처분 시설’이라고 불리는 청소년회복센터에 들어가 6개월을 지냈다.

광환을 다시 붙잡아준 건 공이었다. 축구를 포기해야 했던 광환의 과거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정창호 마이코즈 청소년회복센터장은 “축구를 잘하면 미국에 갈 수 있다”며 홈리스 월드컵 출전을 제안했다. 지난해 봄이었다.

2003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처음 시작한 홈리스 월드컵(Homeless World Cup)은 매년 50여개국에서 5백여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다. 홈리스가 스스로 삶을 바꿀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 인식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경기는 4 대 4 ‘길거리 축구’ 방식으로 치러진다.

거리에 사는 노숙자만 홈리스가 아니다. 국외에선 경제적 빈곤으로 월세를 잘 내지 못하거나, 최소 주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곳에 사는 주거빈곤층도 홈리스라 부른다. 지난해 7월 미국 새크라멘토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선수 대부분도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청년)이었다. 그때 광환은 어머니와 둘이 작은 방을 얻어 살고 있었다.

지난해 7월 차광환이 홈리스 월드컵에서 뛰고 있다. 빅이슈코리아 제공

지난해 7월10일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한 브라질 대표팀 선수들과 사진 찍는 차광환(노란색 옷 오른쪽). 빅이슈코리아 제공

“이것도 어떻게 보면 (우리가) 나라를 대표해서 나가는 건데, 솔직히 ‘꿀릴 순 없지 않나’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보여줘야 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지난해 홈리스 월드컵에 나간 광환의 목표는 우승이었지만 벽이 높았다. 한국팀은 5승 6패로 전체 28개국 중 19위를 했다. 이긴 경기보다 진 경기가 많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다. 홈리스 월드컵 한국팀 운영을 맡는 안병훈 빅이슈코리아 이사는 “(홈리스에게는) 동등한 상황에서 서로를 ‘리스펙트’(존중) 하는 경험이 아주 적다”며 “홈리스 월드컵을 통해 바뀌는 아이들을 봤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울산의 한 스튜디오에서 한겨레와 만난 차광환. 조윤상 피디

홈리스 월드컵은 광환의 삶을 바꾼 계기가 됐다. 축구를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광환은 지난달 10일에도 일본 다양성컵에 참가해 선수로 뛰었다. 다양성컵은 성별, 소득, 지역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국제 축구대회다.

광환은 공 하나로 친구를 사귈 수 있고, 공 하나로 삶의 의지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게 고마워 광환은 오는 9월 서울에서 열리는 홈리스 월드컵에 자원봉사자로 참석해 손을 보탤 생각이다.

광환은 인생 ‘버킷리스트’(꼭 하고 싶은 일의 목록)를 적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지난 홈리스 월드컵에서 친구가 된 외국 선수를 만나러 가는 일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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