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봄의 할 일] ① 세월호 10년 기억하다
뉴시스
봄볕이 따사한 4월에도 여전히 가슴 시린 이들이 있다. 10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서 가라앉은 세월호는 아름다운 봄날을 상처와 아픔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304명을 떠나보낸 가족은 무너져내렸다. 국민은 아파하고 분노했다.
누군가는 이제 세월호를 그만 잊고 떠나보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묵묵히 삶을 견뎌온 유가족과 참사 생존자들은 세월호를 잊을 수 없다. 이들이 참사 당시 겪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트라우마는 여전하다. 이들에게 아직 한국 사회는 안전한 곳이 되지 못했다.
세월호가 남긴 삶의 무게는 여전하다. 당시 세월호에 탔다가 가까스로 생존한 화물기사들은 4월이 되면 배와 바다를 떠올린다고 했다. 생업을 위해 아직도 제주행 배에 오르는 권상환(48)씨는 지금도 비상구 앞에 움츠린 채 항해 시간을 견딘다. 세월호 생존자 중 가장 마지막까지 승객을 구한 ‘파란 바지 의인’ 김동수(58)씨는 4월이 되면 ‘어둠’과 ‘고통’을 떠올린다. 그는 참사일이 다가오면 세상과 단절되고 어둠 속에 갇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희생자 구조에 나섰던 잠수사들에게 4월은 ‘팽목항’과 ‘세월호’로 기억된다. 유가족들은 ‘그리움’과 ‘노란 리본’을 4월의 이미지로 꼽았다.
이들에게 기억은 고통이다. 참사로 어머니를 떠나보낸 세월호 일반인유가족협의회 부위원장 김영주(49)씨는 “세월호는 죽을 때까지 가져가는 아픔”이라고 했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인명을 구하다 팔을 잃은 잠수사 황병주(65)씨는 “세월호가 잊히면 내 삶이 무의미해질 것 같다”고 했다. 딸을 먼저 떠나보낸 4·16기억저장소장 이지성(50)씨는 “함께 기억해 달라. 기억하면 많은 게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생존자와 유가족은 아픔을 딛고 일상을 회복하고 싶어한다. 아들을 잃은 4·16안전사회연구소장 장훈(54)씨는 유리 조각마저 품는 말랑말랑한 장난감 ‘슬라임’처럼 아픈 상처를 포근히 감싸주는 회복을 꿈꾸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잠수사 김상우(51)씨는 “회복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유가족끼리 서로 보듬으며 회복과 치유를 꿈꾸는 이들도 있다. 딸을 잃은 김순길(57)씨는 “세월호 유가족과 꾸린 공동체에서 희망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