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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수입하려면 철저한 8단계 검역절차 밟아야
절차 이행에 평균 8.7년... 사과는 22년째 '검역 중'
외래 해충 위험 커서 WTO도 '방역 주권' 인정

편집자주

즐겁게 먹고 건강한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그만큼 음식과 약품은 삶과 뗄 수 없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도 많습니다. 소소하지만 알아야 할 식약 정보, 여기서 확인하세요.
10일 서울 마포구 마포농수산물시장에서 사과가 매대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국민 과일' 사과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제수용 사과는 하나에 1만 원을 호가합니다. "사과 가격을 잡으려면 사과를 수입하자"라는 주장까지 나오는 판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내지른 말일 수도 있을 텐데,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젓습니다. 지금 당장 외국 사과를 들여오려면 검역 절차를 간소화해야 하는데 자칫 병해충 유입으로 수습불가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겁니다.

동남아 여행 기념품으로 생망고를 사 왔다가 세관에 빼앗겼다는 이야기, 한 번쯤 들어보셨나요. 국내로 들어오는 모든 과일은 '식물검역'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총 8단계 식물검역... 평균 8.7년 걸려



농식품부가 사과 수입을 허용한 국가는 아직 없습니다. 11개국이 사과를 수출하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검역 절차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과일을 수입하기 위해선 ①요청 접수 ②절차 착수 ③예비위험평가 ④개별 병해충 위험평가 ⑤위험관리방안 작성 ⑥수입허용기준 초안 작성 ⑦입안예고 ⑧고시·발효의 8단계로 이뤄진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간 국내 수입이 허가된 과일 76종을 보니 절차 이행에 평균 8.7년이 걸렸습니다.

사과의 경우 1992년 수입을 요청한 일본이 5단계인 '위험관리방안 작성'에 머물러 있습니다. 독일과 뉴질랜드가 3단계, 미국이 2단계에 있고, 호주 등 7개국은 1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천신만고로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완료했다면 일단 수입이 가능하지만, 수출국의 식물검역당국이 발행한 위생증명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국가마다 과일마다 수입 조건도 제각각입니다. 멜론은 일본과 뉴질랜드에서 수입할 수 있고, 덜 익은 바나나는 세계 전 지역에서 들여올 수 있습니다. 수입국 내 일부 지역이 배제되기도 합니다. 미국 키위는 수입할 수 있지만 하와이주는 제외되고, 일본 자몽도 규슈산(産)은 수입할 수 없습니다.

고온에 찌고 저온에 방치하고... 살균 조건 수입도



살균 처리를 조건으로 수입하는 과일도 있습니다. 망고가 대표적입니다. 대만 필리핀 태국 호주 등 10개국에서 수입이 가능한데 '증열 처리'가 조건입니다. 병해충이 사멸하도록 고온의 증기로 망고를 한 번 쪄야 한다는 겁니다. 보통 47도 온도에서 30분간 시행합니다. 이 같은 고온 살균은 높은 온도를 버틸 수 있는 열대과일에 주로 시행됩니다.

지난달 24일 서울 시내 한 마트에서 한 시민이 망고를 구매하고 있다. 뉴스1


반대로 저온 살균을 거쳐 들여오는 과일도 있습니다. 오렌지는 미국(플로리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페인 등에서 주로 수입되는데, 0~2도 저온에 20일가량 노출해 해충을 사멸시키는 조건입니다.

검역 협상이 완료된 과일이라도 원산지에서 병충해가 발생했다면 긴급 수입정지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3월 농림축산검역본부는 호주 남부 리버랜드에서 생산하는 포도, 오렌지 등의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우리 당국이 금지 해충으로 지정한 퀸슬랜드 과실파리가 해당 지역에서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1월엔 미국 캘리포니아 일부 지역에 같은 해충이 발생해 자몽, 레몬, 아보카도 등의 수입이 중단됐습니다.

식물검역은 WTO가 인정한 주권



우리나라만 유독 검역에 까다로운 건 아닙니다. 식물, 특히 과일에 대한 검역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인정한 주권입니다. 자유로운 무역을 추구하는 WTO지만, 공산품과 달리 동식물은 병균이나 해충을 옮길 수 있기에 회원국이 수입 제한 등 조치를 취할 권리를 인정한 것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WTO 회원국은 국제식물보호협약(IPPC)에서 채택된 기준에 따라 위험분석을 하고 수입 여부를 결정합니다.

세계 각국이 고강도 검역의 필요성에 합의한 건 역사적 경험 때문입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필록세라’라는 진드기가 있습니다. 북아메리카가 고향인 이 곤충은 19세기 유럽 포도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유럽이 신대륙 미국과 활발히 교류하는 과정에서 필록세라도 유럽에 유입됐는데, 유럽 포도나무들은 독성을 뿜는 이 외래 해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이 시기 유럽의 와인 생산량은 절반 넘게 줄었다고 합니다.

과수화상병 피해를 입은 나무. 당진시 제공


한국도 외래 해충 때문에 피해를 본 적이 있습니다. 2015년 미국에서 불법으로 들여온 사과 묘목을 통해 국내 34개 시군에 과수화상병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과수화상병은 과일나무의 잎과 줄기가 화상을 입은 듯 말라 죽는 병인데, 2015~2023년 연평균 247억 원의 손실보상과 365억 원의 방제 비용을 발생시켰습니다. 게다가 일본이 과수화상병을 이유로 2015년 6월부터 한국산 사과, 배 등의 수입을 금지해 농가 피해는 더욱 불어났죠.

이런지라 당국은 단호합니다. 백번 양보해 물가 잡으려 사과 수입에 나선다 해도 검역 절차만큼은 건너뛸 수 없다는 것이죠. 농식품부 관계자는 "외래 병해충이 유입되면 해당 과일 생산량 및 상품성이 떨어져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며 "다른 작물로도 해충이 번져 방제 비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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