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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백패킹
진해 장복산
경남 창원시 장복산 편백숲을 지나 접어든 비탈길에서 아들을 반겨주던 진달래꽃.

산불조심기간에 오른 봄꽃 명소
진해군항제 첫날, 벚꽃은 아직
따스한 봄볕 쬐며 가볍게 등산

“와…. 정말 상쾌하다. 아빠도 한번 해봐!”

편백나무가 빽빽한 하늘을 올려보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쉬기를 두어번 반복한 아들이 말했다. “그래? 그럼 아빠도 한번 느껴볼까?” 만 7살 아이 옆에 나란히 선 나는 두 눈을 감고 편백 숲에 몸을 내맡겨 봤다. 피톤치드를 한가득 머금은 숲 내음에 나도 모르게 배시시 미소가 지어졌다.

지난달 23일 여행의 목적지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장복산(582m). ‘창원 편백 치유의 숲’을 출발해 장복산과 덕주봉을 거쳐 안민고개로 하산할 계획이다. 아이와 걷는 이 길은 치유의 숲이 품고 있는 다섯구간 중 하나인 ‘두드림길(5.4㎞)’이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걷기 좋은 ‘어울림길(1.3㎞)’과 ‘해드림길(2㎞)’, 조금 더 깊은 숲을 거닐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다스림길(3.1㎞)’과 ‘더드림길(3.8㎞)’도 있지만, 우리는 다섯개의 트레일 코스 중 유일하게 장복산 정상을 아우르는 두드림길을 선택했다. 울창한 편백 숲이 만든 선선한 그늘을 즐기며 천천히 걸음 옮기기를 30분, 숲길의 끝에서 ‘장복산 정상 1.3㎞’ 이정표와 함께 본격적인 비탈길이 시작된다.

분홍으로 물들기 시작한

“어? 저기 꽃이다! 산에도 꽃이 피었어, 아빠! 그런데 저 꽃은 뭐지? 진달래인가?” 송골송골 땀방울이 이마에 맺혀오지만, 때마침 시선을 사로잡는 짙은 분홍빛 꽃잎에 표정이 밝아졌다. 이날은 진해군항제 첫날이다. 하지만, 때늦은 꽃샘추위와 최근 내린 비로 일사량마저 부족해진 탓에 개화 시기가 미뤄졌다. 상대적으로 도시보다 기온이 낮은 산은 그 시기가 더 늦기에, 혹시 아이가 꽃이 만발한 봄 산행을 기대했다가 실망하지는 않을지 염려됐다. 옷장 깊이 넣어둔 겨울 재킷을 다시 꺼내 입고 등교했던 최근의 기억을 상기시키며 아직 겨울이 다 가지 않았음을, 그래서 봄꽃을 만나기는 어려울 수도 있음을 은근히 전했다. 기대가 없었기에 반가움이 더 컸던 걸까. 한달음에 꽃나무 앞으로 달려간 아들은 진달래꽃임을 확인하곤 말을 이었다.

“아빠, 꽃이 피는 순서가 따로 있어? 벚꽃은 언제 펴? 우리 학교 중정 나무엔 노란 꽃이 가득 폈는데, 선생님이 그건 산수유꽃이라고 했어.”


진달래와 산수유는 꽃잎을 피웠는데 벚나무는 왜 아직이냐는 물음이었다. 산수유꽃은 벚꽃보다 개화 시기가 조금 앞선 꽃이고, 이곳 진해의 벚꽃은 아마 다음 주 중에 필 것 같다고, 그리고 우리 동네 세종의 벚꽃은 아마 4월은 되어야 볼 수 있을 거라고 알려줬다. 잠시 고민에 잠겼던 아들은 이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3월의 햇살이 제법 따사롭다. 봄꽃을 뒤로하고 그늘 한점 없는 산길을 구불구불 따라 올랐다.

“와아, 바다다!” 암릉 구간(보통의 산행구간 중 커다란 바위로 이뤄진 등산로)을 지나 능선에 올라선 아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여좌천과 진해역, 중원광장을 넘어 진해만의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눈을 감고 먼바다로부터 밀려오는 선선한 바람에 몸을 맡겼다. 흘러내리던 땀방울이 바람에 말끔히 씻겨가는 상쾌함이란! “그런데 아빠, 정상은 얼마나 더 남았어? 우리 꽤 온 것 같은데!” 아들의 물음에 휴대전화의 지도 앱을 열어봤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100m 남짓.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어디 보자. 아, 저기다! 저기 정상석이 보이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긴 아들은 ‘장복산 582.2m’라고 새겨진 정상석과 인사를 나누곤 한편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4㎞ 남짓한 산행이 힘들었는지, 아니면 식사가 부실했는지, 이른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허기가 몰려왔다. 평평한 돌에 걸터앉아 삶은 달걀과 방울토마토를 꺼냈다. 달걀을 한입 베어 물고 우물거리며 진해만을 바라봤다. 따스한 봄볕과 선선한 바람을 만끽하는 산 정상에서의 휴식은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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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오를 때 화기 소지 안돼!”

덕주봉을 지나니 진해만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적당한 포만감 속에 우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진 목조 데크 계단을 타고 내려가 조붓한 숲길을 지난다. 몇차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한 끝에 사각지붕의 정자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두드림길의 원래 경로는 이곳 삼거리에서 오른쪽 ‘치유센터 1.75㎞’ 방향으로 내려가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코스. 하지만,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안민고개다. 갈림길에서 두드림길과 작별을 고하고 덕주봉 방향으로 직진했다. 걷는 길이 지루할 만하면 진달래 군락지가 우리를 마중하고, 그러다 또다시 힘겨워질 때면 바다를 조망하는 시원한 등산로가 우리를 절로 쉬게 해주었다.

“어, 아빠 저건 뭐야? 텐트는 아닌 것 같은데….” 적잖은 경사를 오른 끝에 도착한 언덕 위의 작은 녹색 천막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산불 감시 초소야. 저기 앞에 펄럭이는 노란 깃발에 글씨 보여?” “응, 산불 조심!” “맞아. 지금은 산불 조심 기간이거든. 산에는 봄방학과 가을방학이 있다고 했던 말 기억나? 그땐 가을방학이었고, 지금은 봄방학 기간이거든.”

지난해 가을, 강원도 영월의 장산(1408m) 일정을 계획했다가 뒤늦게 산불기간임을 인지하고 걸음을 돌렸던 기억이 있다. 산불이 빈번히 발생하는 2월1일부터 5월15일까지와 11월1일부터 12월15일까지가 산불 조심 기간이다. 이때는 전국 많은 산의 입산이 통제되거나 등산로가 폐쇄된다. 아름다운 봄꽃 명소 장복산은 다행히 산불 조심 기간에도 산행이 가능하지만, 대신 산불감시원들이 산을 지키고 있는 거라고 알려줬다. 4년간 전국의 수많은 산과 섬을 누벼온 베테랑 꼬마 백패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그리고 산에 오를 때는 화기를 소지해서는 안돼!”라며 내 말을 받았다.

덕주봉을 지나 안민고개로 내려가는 길, 온종일 따사롭게 우리를 비춰주던 해가 등 뒤로 뉘엿거린다.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는 총 7㎞, 목적지인 박지(1박을 할 수 있는 곳)까진 이제 1㎞가 채 남지 않았다. 내 곁에서 여섯 시간을 꼬박 발을 맞춰 걷던 아들이 물었다.

“아빠, 다음 주에는 여기 벚꽃이 다 필 거라고 했지?” “응,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대부분의 벚나무가 꽃을 피울 것 같아.”

잠시 뜸을 들이던 아들이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럼, 엄마랑 동생이랑 함께 와보면 어떨까? 백패킹은 말고, 여행으로! 당일 여행도 좋고 숙소에서 하루 자고 가도 좋고!”

벚꽃이 만발한 길을 걷는 네식구를 상상하니 싱긋 미소가 지어졌다. 아직 산행이 서툰 어린 동생은 조금 더 쉬운 길이 좋겠다는 아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좇으며 우리는 안민생태교를 건넜다.

글∙사진 박준형 작가

평일에는 세종시와 여의도를 오가며 밥벌이를,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배낭을 메고 전국의 산과 섬을 누비고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자연으로 한 걸음 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책 ‘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를 썼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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