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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비욘세 ‘카우보이 카터’
비욘세 누리집 갈무리


‘비욘세(Beyonce) 당신은 그저 비욘드(Beyond).’

특정 인종의 신체적 능력이 다른 인종보다 뛰어나거나 열등하다는 표현은 인종차별적이지만, 특정 인종이 특정 스포츠 종목에 유리하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이건 차별이 아니라 차이다. 육상 종목이나 미국 프로농구(NBA)에는 흑인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반대로 수영이나 골프 같은 종목 상위권에는 흑인 선수가 드물다. 탁구나 양궁처럼 동양권 선수들이 메달을 휩쓰는 올림픽 종목도 있다.

대중음악도 그렇다. 솔(soul)과 힙합 장르는 흑인 아티스트의 비율이 절대적인데 록 음악은 1%도 안 된다. 물론 이미 일가를 이룬 백인 래퍼 에미넴도 있고,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라고 칭송해도 과찬이 아닌 지미 헨드릭스도 있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케이팝을 필두로 한 일렉트릭 댄스 역시 흑인 아티스트가 비교적 적은 장르. 그렇다면 흑인을 가장 찾아보기 힘든 장르는 뭘까? 단언컨대, 컨트리 음악이다.

비욘세가 컨트리 장르의 새 앨범을 발표했다. 그가 21세기 최고의 흑인 여성 가수라는 주장에 별 이견이 없을 텐데, 인종과 성별을 구분하지 않아도 열 손가락에 넉넉히 들 것이다. 음악 외적으로도 셀럽의 모든 조건을 갖춘 비욘세의 경력은 1990년대 중반에 시작해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인기곡과 앨범을 발표했고 테일러 스위프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거대한 공연을 선보였다. 가수로서 모든 영역에서 정상을 정복했기에 앞으로 그가 거둘 성공은 이전에 거둔 성공의 반복이라고 생각했는데…, 허를 찔렸다. 비욘세가 컨트리 앨범을 내다니! 빌보드 닷컴에 따르면 그의 새 앨범 ‘카우보이 카터’는 흑인 여성으로 컨트리 차트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앨범이 되었고, 타이틀 ‘텍사스 홀덤’ 역시 흑인 여성으로 컨트리 차트 1위를 차지한 최초의 노래가 되었다.

앨범이 공개되자마자 내 마음속 소리는 이랬다. ‘작정했구나.’ 수록곡이 무려 28곡에 총길이 78분20초라니. 앨범을 다 들은 나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새 앨범을 듣자마자 이 정도로 압도당했던 기억이 언제였는지 차분하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테일러 스위프트,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위켄드… 정말 좋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포스트 멀론, 브루노 마스, 아델… 꼭 10년 전인 2014년까지 가서야 멈출 수 있었다. 다프트 펑크의 마지막 정규 앨범을 들었을 때였다. 그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영감과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라, 음악의 신이 강림해야 가능한 결과물이라고. 선전포고처럼 들리는 첫 곡 ‘아메리칸 레퀴엠’의 노랫말을 보자.

예전엔 내 말투가 ‘너무 촌스럽다’(too country)고 하더니/ 이젠 컨트리 음악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네/ 말해봐, 이게 컨트리가 아니면 대체 뭐가 컨트리야?

이 노랫말은 예언이 되었다. 앨범이 나온 뒤 컨트리 음악 전문 방송에 노래를 틀어달라는 신청이 쇄도했으나 비욘세의 노래를 컨트리 채널에서 틀 수 없다며 거절한 예가 속출한 것이다. 결국 비욘세는 모든 편견을 넘어서 당당하게 컨트리 음악 정상에 자신의 깃발을 꽂았다. 처음 봤을 때는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던 대담하고 화려한 카우보이 패션도 이제 정복자의 예복으로 보인다.

무릇 좋은 음악이 그러하듯, 이 앨범도 들을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가능하다. 컨트리 음악의 전통에 솔과 힙합을 가미하는 시도까지는 예상 범주에 들어간다. 그러나 비틀스의 노래 ‘블랙버드’를 통째로 다시 부르고 비치보이스와 이탈리아 가곡까지 품는 자신감은 정말이지… 들으면서 귀를 의심하는 충격이었다. 11번 트랙 ‘도터’는 이 앨범이 뻗어 나간 영토의 끝이 얼마나 아득하고 풍요로운지 알려준다. 학교 음악 시간에 배웠던 이탈리아 가곡 ‘카로 미오 벤’을 담은 이 노래 바로 다음 트랙을 보고 또 무릎을 쳤다. 제목이 ‘스파게티’라니! 이런 노래는 웃긴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좋기까지 한 거야? 비욘세 당신은 그저 비욘드입니다.

오래전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로 일할 때 선배들이 종종 말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너무 많은 광고가 제작되어 더는 새로운 광고가 어렵다는 뜻이었다. 방송국에 오래 다니면서 그 말은 대중음악에도 통한다고 생각했다. 매일 수십 수백곡의 신곡이 쏟아지니 이제 하늘 아래 새로운 노래는 없다고. 틀렸다. 비슷비슷한 노래들의 홍수 속에 이토록 새로운 걸작이 솟아올랐다. 짝짝짝.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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