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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아직도 ‘마포아파트’에 산다 [책&생각]
건축학자 고 박철수, 제자 이인규의 주거문화 탐구
임대 아닌 분양, 고층아파트, 대단지 등의 DNA
마포주공아파트의 Y자형 건물 앞 놀이터. 대한주택공사 홍보실 보유 자료. 마티 제공


마포주공아파트
단지 신화의 시작
박철수 지음 l 마티 l 2만5000원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건설·거주·재건축의 40년
이인규 지음 l 마티 l 2만2000원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처럼 아파트는 우리나라 주거의 ‘절대 우세종’이다. 그 정점에 1000세대 이상이 집단 거주하는 ‘대단지’ 아파트가 있다. 재개발·재건축으로 온 국토를 갈아엎고 다시 세우는 중에도 이 디엔에이(DNA)만큼은 확실하게 유전되어 왔고 앞으로도 굳건하게 유전될 전망이다. 한국이 품고 있는 온갖 ‘근대성’ 가운데, 이 정도로 뿌리 깊은 것이 과연 또 있을까.

“20세기 한국이 만든 근대성”을 묻는 도서출판 마티의 ‘케이 모던’ 시리즈 첫 권은, 그래서 건축학자 고 박철수(1959~2023, 서울시립대 교수)의 ‘마포주공아파트’여야 했다. “한국이 만들어낸 것 가운데 아파트단지만큼 한국인의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사물이 없고, 그 시작점에 마포주공아파트가 있으니 말이다.”(편집자 박정현) 박 교수는 생전 한국 근대 주거문화의 변천사를 종합한 대작 ‘한국주택 유전자’를 펴냈는데, 유작인 ‘마포주공아파트’는 그중 마포주공아파트 관련 꼭지의 ‘심화편’에 해당한다. 1970년 전체 주택 중 아파트의 비중은 0.77%에 불과했는데, 50년이 흐른 뒤 62.95%(2020년 기준)에 이른다. 지은이는 이 흐름의 출발점에 “반공주의와 발전주의 그리고 여기에 권위주의가 결합한 박정희 정권에서 탄생해 1970년대 후반에 완성을 본 마포아파트 체제”가 있으며, 이는 “곧 대한민국의 공간 생산 방식이자 규범”이라 본다.

군사 정부가 내건 ‘생활 혁명’

마포아파트는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 정부의 ‘발전국가’와 건축이 만난 결과물이었다. 쿠데타 핵심 세력으로서 1961년 쿠데타 직후 대한주택영단(대한주택공사) 이사장에 취임한 장동운은 마포형무소의 노역장 부지에 10층 높이의 11개동 1158세대를 품는 아파트단지를 짓는 ‘시범’ 계획을 서둘렀다. 자신들이 ‘혁명’이라 부른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군사 혁명을 생활의 혁명으로” 전환한다는 것을 보여줄 국가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이다. “쿠데타를 혁명이라 부른 이들은 ‘토지의 효율적 이용과 현대적 집단생활방식’의 도입을 한국의 도시와 한국인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으로 여겼”고, 따라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주택의 공급 그 자체가 아니라 ‘단지의 규모와 이를 채울 주거동의 높이’ 따위의 스펙터클이었다. 엘리베이터 설치, 입식생활, 장독대 철폐, 라디에이터 난방 등 ‘현대식’ 시설에 대한 약속 역시 같은 맥락에서 강조되었다.

마포주공아파트 조감도. 출처 ‘주택’ 제7호(1961년 12월) 화보. 마티 제공

‘주택’ 제7호에 표지에 실린 10층의 마포아파트 조감도. 출처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박물관. 마티 제공

마포주공아파트단지 1,2단계 준공 후 항공사진. 출처 대한주택공사. 마티 제공

고작 2~3층 정도의 아파트를 지어왔던 대한주택영단에 10층 아파트를 한곳에 11동 짓는다는 계획은 모험이었다. 무엇보다 자금 문제가 난망이었다. 당시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미국경제협조처(USOM)는 한국에는 아파트보다 난민구호주택을 더 많이 지어야 한다고 봤고, 1961년 11월 마포아파트 건립 계획을 조목조목 따져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민정이양 약속 기한을 앞둔 군사 정권에 마포아파트는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와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강행해야 하는 사업이었다. 결국 한국 정부의 자금 5억원을 들여 마포아파트는 어찌어찌 건설된다. 정부 전체 예산이 768억원이던 시절(1963년)이다. 10층에서 6층으로 설계 변경해 ‘높이’를 양보했고, 엘리베이터는 뒷날 설치한다며 홀만 남겨뒀다.

정부, 기간 시설 최소 투자할 뿐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주택 공급’ 측면에서 마포아파트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문제다. 마포아파트는 애초 ―자형 4동을 분양용으로, Y자형 6동을 임대용으로 지었는데, 임대 신청이 저조한데다 대한주택공사의 자금난이 커지자 대한주택공사는 1967년 Y자형 주거동 모두를 임대에서 분양으로 전환해버렸다. 이는 이후 공영이건 민간이건 ‘임대가 아닌 분양’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외길을 낳게 된다. 지은이는 여기서 “주택 공급에 관한 주택공사의 역할과 정부 정책의 향방을 결정지었을 뿐 아니라, 이후 분양받은 소유자가 관리와 재개발을 모두 결정하게 함으로써 아파트단지가 폐쇄적 단위로 변모해간 원인”을 찾는다. 고층아파트, 단지화뿐 아니라 “정부가 단지까지의 진입로 같은 최소한의 기간시설에만 투자한 뒤 택지를 민간에 매각하면, 민간 업체가 단지 안의 모든 것을 입주자들의 분양대금으로 해결하는 방법” 역시 이 ‘마포아파트 체제’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1967년 시작한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주택 정책과 관련해 ‘민간투자 최대한 유치’, ‘가능한 한 고층아파트’, ‘대단지 조성 사업’ 등을 명시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철거 중인 둔춘주공아파트. 사진 Ⓒ류준열. 마티 제공

‘마포주공아파트’는 건축학자 고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의 유작이다. 마티 제공

‘마포아파트 체제’는 이후 한강아파트, 반포아파트 등으로 이어져 1976년 완공된 잠실아파트에 이르러 ‘근린주구론’의 이상을 최대한 구현하는 “단지화 전략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다. 최초의 아파트단지였던 마포아파트는 1994년 다시 최초의 ‘재건축’ 아파트단지가 된다. 도시개발법, 주택건설촉진법 등 1980년대 잇따라 제·개정된 법률들이 ‘재건축의 시대’를 열었다. ‘케이 모던’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는 1980년 5000세대가 넘는 당시 최대의 아파트단지로 만들어진 둔촌주공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지은이가 이 아파트단지의 40년 생애를 종합한 책이다. 지은이는 권력에 의해 ‘걸러진’ 중간계급 이상의 주민들이 모여 사는 폐쇄적인 단지였을지언정 그 주민들에게는 중요했던 ‘쾌적하고 살기 좋다’는 가치가 어떻게 ‘이익 창출에 대한 기대감’에 떠밀려 사라져갔는지 짚어낸다. 둔촌주공아파트의 재건축은 재건축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전략들이 횡행하며 무려 20년을 끌었고, 결국 정부까지 각종 규제를 완화해주는 등 ‘둔촌주공 일병 구하기’에 나서 간신히 위기를 틀어막았다. 지은이는 이 과정이 “20년에 걸쳐 이루어진 비효율을 일반분양의 성공을 통해 타인에게 전가하려고 애쓴 기나긴 투쟁”이었다고 짚는다.

스승과 제자가 각각 쓴 이 두 책은 우리나라 근대 주거문화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꿰어주는 한편, ‘아파트 공화국’에 집약된 한국의 근대성이 과연 무엇인지 묻는다. 도대체 한국인에게 집은 여태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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