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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성과 기술력이 있지만 지금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는 혁신 기업을 발굴하고자 2005년 도입한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도입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기술 특례로 상장한 기업 중 성공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96%의 기업이 상장 당시 제시한 실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4곳 중 3곳은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기술특례기업의 81%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퇴출을 유예해 줘 ‘좀비기업’만 양산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기술특례상장 제도의 문제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혁신 기술을 평가할 전문가는 기술성 평가기관에 없다.”

최근 만난 바이오 회사 대표이사는 기술성 평가에 대해 이렇게 단언했다. 기술성 평가를 거쳐 기술특례 제도를 이용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회사인데도, 평가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높지 않다는 의미가 담겼다.

기술특례 상장제도의 핵심은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전문 평가기관 두 곳으로부터 기술성 평가를 받고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수한 기술력, 미래 성장 가능성, 경영 전략 등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보라는 뜻이다. 그러나 평가기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업계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경. /뉴스1

‘혁신 기술’ 알아볼 전문성 부족... 기관마다 평가 등급도 복불복
10일 기준 한국거래소와 연계해 기술성 평가를 진행하는 전문 평가기관은 총 25곳으로 집계됐다. 기술특례 상장 준비 기업은 한국거래소가 지정하는 2곳의 평가기관으로부터 A등급과 BBB 등급 이상을 받아야 상장 예비 심사 청구 자격을 갖출 수 있다. 이때 평가기관을 선택할 순 없지만, ‘A등급을 잘 주는 곳’으로 입소문 난 기관이 분명히 있어서 이쪽이 걸리길 희망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기업마다 다르지만 기술성 평가는 보통 2개월 정도 걸린다. 기술성 평가에 필요한 자료를 형식에 맞춰 제출하면, 평가기관이 이를 검토하고 추가 자료를 요청해 보충하는 방식이다. 크게 기술성, 시장성으로 나누고 다시 세세한 항목을 보고 판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평가기관에서 ‘우수한 혁신 기술’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예로 세계 최고의 유전자 기술, 항공 우주 기술, 인공지능 기술 등을 갖고 기술성 평가를 신청하더라도 어떤 평가위원이 이를 잘 이해하고 평가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기술성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평가위원에 대한 정보는 모두 공개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평가기관의 전문성 논란이 뒤따른다. 2019년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두 차례 기술성 평가에서 탈락한 상태였지만, 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글로벌 빅파마인 베링거인겔하임과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평가기관이 새로운 기술을 알아볼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방증한 셈이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기술성 평가 과정을 회고하며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깊게 본다는 느낌이 없었다”며 “뭉뚱그려 비슷한 업종으로 묶어 비교하려는 경향이 있어 세세하게 차별화된 기술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기업들 사이에선 기술성 평가가 복불복과 같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우호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기관이 있는 반면, 반대로 과하게 삐딱한 시선으로 기술을 대하는 곳이 있다. 기술성 평가 준비 기업들 사이에서는 평가기관 중 기술신용평가기관(TCB)에 대한 선호도가 낮다. 기업 재무 상황 등 신용평가에 대해선 전문적이지만, 혁신 기술에 대한 이해도는 낮은 경향이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출처= 한국거래소에서 발간한 '2023 코스닥 상장심사 이해와 실무' 중 일부.

기술성 평가 능력이 떨어지다보니, 누가 투자했는지에 의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기술성 평가 자문단의 업무를 맡은 바 있는 한 교수는 “벤처캐피탈(VC)의 투자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VC 등 투자자들이 전 기술과 사업성을 꼼꼼히 평가했을 것이라 믿고, 투자 유치 실적이 많은 기업은 긍정적으로 접근했다는 취지다.

스타트업 투자 데이터베이스(DB) 전문 회사인 더브이씨(The VC)가 제공한 기술특례상장 기업 103개사의 투자 이력을 살펴본 결과, 평균 10곳으로부터 기업공개(IPO) 전 투자를 유치했다. 30곳 이상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기업도 있었다. 투자 규모도 적지 않았다.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시드(Seed) 투자부터 프리IPO 투자까지 평균 327억원을 투자자로부터 조달했다.

신뢰도 개선·합리적 평가 위한 ‘기술평가모델’ 제시... 한계점도
앞서 2022년 거래소는 평가기관에 대한 한계점을 인지하고, ‘기술평가 모델’을 개발했다. 표준 평가 지침을 만들어 평가의 신뢰성을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달라진 기술평가 모델에 맞춰 기업들의 꼼수도 진화했다. 상장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력을 키우는 것보다 양적 평가 기준에 맞춰 당장 기술성 평가를 통과하는 게 더 나은 전략일 수 있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평가 기준에 맞춰 임상 파이프라인 개수를 조정하거나, 자회사를 만들어 무리해서 기술이전 실적을 쌓는 기업이 있다”고 귀띔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평가모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이 ‘인맥’이다. 평가기관마다 다르지만, 자문 인력을 외부에서 채우는 경우가 있다. 이때 포함된 전문가가 신청 기업 창업주나 경쟁사와 친분이 있는 관계자일 수 있다. 바이오텍은 교수가 창업하는 사례가 많다 보니 이들의 좁은 인맥에 따라 상장 문턱이 달라지는 것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술성 평가 자문단에서, 심지어 거래소 심사 단계인 상장위원회 위원 중에서도 신청사, 또는 경쟁사와 관련된 인물이 포함된 사례를 봤다”면서 “거래소가 합리적 평가 모델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사람 문제라 어떻게든 해결이 어려운 것 같다”고 지적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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