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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고랭지 작물까지 덮친 지구 온난화
춘천서 감자 키우는 김덕수씨
3월 내내 비 오락가락 날씨에
씨감자 심지 못해 속 타들어가
김덕수씨가 재배 예정인 수미 품종의 씨감자. 국내 대표 품종인 수미 감자는 지구 온난화와 길어진 장마 탓에 병충해 피해가 심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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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감자 농사 하면서 이렇게 이상한 3월은 처음입니다.”

지난 5일, 강원도 춘천시 서면의 감자 농장에서 만난 김덕수(53)씨가 5천㎡(약 1500평) 남짓 텅 빈 밭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를 비롯한 이 지역 농가들은 보통 3월 중순께 ‘수미 감자’를 파종해 장마 전인 6월 중순께 수확하지만, 올해는 3월 내내 오락가락한 비로 씨감자 심을 시기를 놓친 탓이다. 전날에야 밭갈이를 시작한 밭 군데군데 검은 퇴비만 흩뿌려져 있었다.

김씨는 “땅이 질어서 이 시기까지 씨감자를 못 심은 건 올해가 처음”이라며 “장마 기간에 집중호우까지 내려 올해 감자 농사를 망치게 될까 봐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파종이 늦어져 수확기가 장마 기간인 6월 말 이후로 밀리면 땅속 감자가 썩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가 감자 농사를 선택한 것은 다른 작물들보다 감자가 기상변화 영향을 덜 받는 작물이었기 때문이다. “감자는 서늘하거나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랍니다. 다른 작물보다 날씨 영향도 덜 받고요. 전세계에서 감자가 중요한 식량 자원인 것도 어디서나 키울 수 있어서예요.” 실제로 심한 가뭄과 태풍이 와서 주변 과일 농가가 울상을 지을 때도, 김씨는 감자 농사로 “평타는 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말이다. 최근 몇년 사이 이상해진 날씨 탓에 큰 피해를 입는 일이 잦아졌다. 특히 2022년 여름엔 집중호우로 감자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 “보통 하루 이틀 강한 비가 오다 마는데 그땐 4일 이상 기록적인 호우가 쏟아지면서 밭이 침수됐어요. 서면은 강 주변 퇴적층 때문에 배수가 잘되는 편이라 이런 일이 없었는데, 그때 침수로 땅속 감자가 모두 썩었죠.”

감자 재배 농가들이 수확기 집중호우만큼이나 피하고 싶은 게 ‘높은 기온’이다. 국제감자연구소에 따르면 ‘열 스트레스’에 민감한 감자의 특성상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생산량이 5%씩 감소한다. 게다가 기온이 올라 고온다습한 환경이 되면, 감자 같은 고랭지 작물의 병충해 피해도 늘어난다. 이영규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소 연구관은 “특히 국내 감자 농가에서 가장 많이 심는 수미 감자의 경우, 기온이 높아지면서 2016년 이후 토양병인 ‘반쪽 시듦병’ 발병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5일 강원도 춘천시 서면의 감자밭에서 만난 김덕수씨가 아직 씨감자를 심지 못한 감자밭을 바라보고 있다. 옥기원 기자

실제로 김씨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1993~1998년 춘천의 평균 온도는 10.8도였지만, 최근 5년(2019~2023년) 평균 온도는 12.2도로 올랐다. 김씨는 “(병충해가 극심해지면서) 4년 전부턴 안 치던 약도 치고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감자 생산량도 급감하고 있다. 김씨는 “2010년 무렵만 해도 농사가 잘될 때는 평당 15㎏ 나오던 생산량이 최근에는 10㎏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농작물 생산 조사를 보면, 2011년 약 62만2천t이던 국내 감자 생산량은 2022년엔 48만1천t으로 22.6%나 감소했다. 감자 재배 면적도 같은 기간 2만7천㏊에서 2만㏊로 줄었다. 농가에선 기온 상승으로 인한 역병 피해로 2010년까지 국내 감자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수미 품종 점유율이 최근 50%까지 떨어졌다고 보고 있다.

한겨레 그래픽

김씨의 이웃 농가 중에선 2022년 집중호우로 감자 농사를 망친 뒤, 가을·겨울철 하우스 채소 재배로 전향한 농가도 있었다고 한다. 과거 감자와 배추 같은 고랭지 작물을 주로 재배하던 강원도 정선은 아예 ‘사과’ 재배지로 탈바꿈하고 있을 정도다. ‘2060년 이후 강원도를 제외한 남부지역에서 사과 재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농촌진흥청 사과 재배적지 예측도)는 전망을 따라 농민들이 강원도로 이주한 것이다. 정선군 임계면에서 사과 농장을 운영하는 이명규씨는 “10년 전에 감자밭이던 땅에서 사과를 키우고 있다”며 “우리 지역 180여개 사과 농가 중 100곳 이상이 남쪽에서 올라온 외지인”이라고 말했다.

박한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과일과채관측팀장은 “고랭지 채소를 키우던 강원도로 사과 같은 과일 재배지가 북상하면서 국내 농작물 재배지도가 변하고 있다”며 “봄·가을철 우박이나 집중호우 같은 이상기후 현상이 심해져 농업의 예측 불가능성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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