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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함 - 생존자들의 법정 투쟁
세월호 팽목기억관 앞 추모조형물에 녹슨 노란 리본이 매달려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참사의 기억 헤집는 ‘신체감정’
‘2차 가해’ 지적, 법원은 모르쇠
10년째 가시지 않는 악몽에도
정부 지급 배상금은 ‘4년 시한부’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남채현씨(27·가명)는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받기까지 이렇게 긴 세월이 걸릴 줄 몰랐다. 생존자 19명은 지난 2월 국가를 상대로 후유장해를 인정하라며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 결과를 받았다. 2015년 9월 소송을 시작한 지 8년5개월 만이었다. 남씨 등 6명에 대해선 추가 배상금이 인정됐다. 나머지 13명은 인정받지 못했다.

트라우마를 증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법원은 후유장해를 판단할 근거로 병원에서 신체감정을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학교·직장을 2주간 비우고 입원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여기서부터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이 갈렸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병원들이 문을 닫았다. 먼저 신체감정을 받은 생존 학생들의 결과 평균치를 다른 이들에게 적용해달라 요청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체감정은 바늘구멍이었다. 한 생존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군에서 의가사제대를 했지만 신체감정 결과 ‘이상 없음’ 판단을 받았다. 트라우마를 인정받기 위해 참사 당시 고통을 헤집어야 했다. 남씨는 “참사의 기억을 계속 꺼내야 해서 공황장애가 왔고 퇴원하고서도 일상생활에 무리가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병원은 남씨의 PTSD 시한이 향후 3년이라 진단했다. 참사 트라우마가 3년이면 끝난다는 것일까? 여전히 남씨는 물이 깊은 곳 근처에 가지 못한다. 10년째 4월이면 여지없이 악몽을 꾼다. 갑작스러운 과호흡도 다반사다. 남씨는 “나이가 들어 내가 낳은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는 때도 트라우마가 올 것 같다”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평생 달고 사는 느낌”이라고 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세월호 참사 생존자 장애진씨의 아버지 장동원씨 서성일 선임기자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직간접적으로 트라우마를 겪는다. 생존 학생 장애진씨 아버지 장동원씨는 딸이 봄이 오면 가위에 눌리거나 고등학교가 언급될 때마다 몸이 경직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4월 벚꽃이 만개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더 무거워진다. 벚꽃과 함께 피던 아이의 미소를 10년 전부터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모른다. 그래서 부모들은 곁을 떠난 자식들이 홀로 감당해야 할 고통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장씨는 “다 큰 딸이 ‘배에 있던 친구가 꿈에 나왔다’면서 엄마·아빠 사이에서 잠들기도 했다”며 “무얼 하더라도 주변의 눈치를 보고 우울감을 느끼는 게 옆에서 보인다”고 했다.

장씨는 생존자와 가족들을 대표해 국가배상 소송을 이끌었다. 생존 학생들이 신체감정을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는 장씨 역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장씨는 ‘신체감정은 2차 가해’라고 항의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장씨는 “다신 감정을 하고 싶지 않다”는 학생들을 설득해야 했다.

살기 위해 여전히 ‘제주행’ 배에 오르는 화물트럭 기사들

생존자 최은수씨(53)도 4년 기한 후유장해를 인정받았다. 그는 10년 전 화물트럭 운전기사로 세월호에 탔다. 기우는 배에서 떨어지며 무릎을 다쳤고 원인 불명의 두통을 앓았다. 참사 이후 5년간 운전대를 잡지 못했고, 대출 이자 상환이 밀리며 빚이 3배로 늘었다. 2년 전 개인회생에 들어갔다. 그는 “10년 전엔 지금 같은 처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가끔 화물트럭을 타고 제주행 선박에 오른다. 주로 야간운전을 하는 화물트럭 기사들은 배에서 눈을 붙이지만 최씨는 더 이상 배에서 잠들지 못한다. “배에서 작은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는 일이 부지기수예요. 저녁만 되면 통증 때문에 머리를 감싸 쥐어도 견디기 힘들고 수면제를 먹어도 한두 시간이면 깨 일상생활이 어려워요.” 매년 4월이면 심해지는 통증 탓에 최씨는 최근 일을 절반으로 줄였다. 그는 10년이 지난 뒤에도 이 고통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국가배상을 인정받고도 웃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 최은수씨. 김송이 기자


‘아직도냐’는 시선에 더 화가 나
“남들은 같은 고통 안 겪었으면”

‘아직도 세월호냐’는 시선은 이들의 상처를 헤집는다. 생존 트럭기사 윤길옥씨(59)는 잠을 못 자 피폐해진 삶보다 피해자를 생각하지 않는 모진 말들에 상처가 덧난다고 했다. 윤씨는 “‘세월호에 탄 덕에 수억원을 받았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때 내가 구하지 못한 여학생이 떠오르며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고 했다. 그는 ‘내가 세상을 떠야 하나’ 싶을 정도로 화가 치밀지만 결국 지쳐 홀로 울분을 삼킨다고 했다.윤씨는 제주에서 국가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2015년 국가가 처음 지급한 배상금은 그의 병증에 ‘4년’이라는 시한을 달았다. ‘4년 이후의 아픔과 고통은 내 탓인 건가?’ 그는 아직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가 트라우마를 더 키우는 것 같다고 했다. 국가가 ‘이만큼 해줬으면 됐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다. 윤씨는 “나라에서 아직까지도 참사로 인한 피해와 트라우마를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재판이 길어지면서 이젠 지친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긴 싸움을 이어가는 건 “다른 참사 피해자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남씨는 “세월호 참사 같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들이 제대로 피해를 보상·지원받을 수 있는 판례를 만들고 싶었다”면서 “쉽지 않을 줄 알았지만, 그래서 더욱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책임감이 컸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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