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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 지침’ 논란
지난 6일 사전투표에 참여한 시민들이 대파 모양 볼펜, 대파 그림 가방, 뜨개질한 대파(왼쪽부터) 등 각양각색의 물건들로 ‘대파 인증샷’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SNS 캡처


대파 지참 유권자 출입 제지

‘투표소 밖 보관’ 안내 지시에

시민들 “표현의 자유 억압”

모형펜 등 투표 인증 줄 이어


4·10 총선 사전투표가 진행된 지난 5~6일 전국 사전투표소에서는 ‘대파 인증’이 이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사전투표소 내 정치적 목적의 대파 반입 금지’ 원칙이 알려지면서다. 일부 시민들은 선관위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실제 대파 또는 대파가 그려진 가방, 대파 모양 볼펜이나 열쇠고리 등을 가지고 투표소를 찾았다.

지난 6일 낮 12시30분 서울 강북구 삼양동주민센터 사전투표소는 선관위 지침대로 대파 반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기자가 들고 간 대파 한 뿌리를 본 선관위 관계자가 “잠깐 밖으로 나와줄 수 있냐”면서 출입을 제지했다. 이 관계자는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지침이 내려와서 어쩔 수가 없다”며 “죄송하지만 지켜보는 눈이 많으니 밖에 두고 와달라”고 요구했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아크릴 물감으로 직접 대파 그림을 그려 넣은 보라색 에코백을 들고 투표하러 간 정윤희씨(45)는 “(선관위 관계자가) 가방을 보더니 대파 그림이 안 보이게 돌려서 메달라고 하더라”면서 “선관위 지침을 듣고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대파가 제지 대상이 된 상황 자체가 촌극 같다”고 말했다.

경기지역에서 투표를 했다는 성기봉씨(58)는 “장바구니 안에 대파를 넣어 갔으나 관계자들이 따로 막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진짜 장을 본 후에 투표소에 갈 수도 있는 건데 ‘정치적’이라는 기준을 대체 어떻게 판단하겠다는 건지 의아하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20~30대 사이에서는 대파 모양 볼펜이나 열쇠고리 같은 물건을 들고 ‘투표소 인증’을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투표템(투표+아이템) 대파 마련했다” “정치적 목적이 있는 대파를 어떻게 구별할 거냐” “대파가 아니라 쪽파도 막을 거냐” “마트에 대파 놓여 있는 것만 봐도 웃기다” 등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직장인 최모씨(28)는 3년 전 공무원시험을 준비할 때 샀던 대파 볼펜을 꺼내 투표소로 가져가 인증 사진을 남겼다고 했다. 최씨는 “볼펜이 비교적 작아 눈에 띄지 않았는지 따로 제지당하진 않았다”며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통제한다는 생각이 들어 인증에 나섰다”고 말했다.

중앙선관위는 사전투표가 시작된 지난 5일 각 지역 선관위에 ‘투표소 항의성 민원 예상사례별 안내사항’을 전달했다. 선관위는 ‘선거인이 정치적 표현물(대파 등)을 소지한 채 투표소 출입’하는 경우를 사례로 들며 “대파를 소지한 선거인에게 투표소 밖 적당한 장소에 대파를 보관한 뒤 투표소에 출입하도록 안내하라”고 지시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선관위 지침이 과도하다는 지적과 함께 현행 선거법상으론 금지하는 게 맞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법적으로 투표소에서는 홍보·유세 행위를 못하게 돼 있으니 상징적인 물품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건 현행법상 맞다”면서 “그런데 대파를 정치적 상징물로 이해할 수 있냐 없냐 판단의 문제가 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설령 대파를 정치적 상징물로 보더라도 시민들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대파를 가져왔는지, 장을 보고 그냥 들고 온 건지 투표소에서 가리는 게 실질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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