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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형법·모자보건법 개정 못 해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주최로 지난해 4월9일 오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임신중지는 건강권’, ‘유산유도제 도입하라’는 문구가 적힌 머리띠를 착용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지 11일이면 꼭 5년이 된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가 관련 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보건의료체계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특히 4·10 총선을 앞두고 있는 여야 정치권이 낙태죄 입법 공백 해소를 위한 대안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어 비판이 제기된다.

여야 원내 정당(10개)이 4·10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과 자체 발간한 공약집 등을 살펴본 결과, ‘성·재생산 권리 보장’을 공약으로 내건 정당은 녹색정의당 단 한 곳에 불과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성·재생산 권리는 폭력과 강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여성이 임신·출산 여부와 그 시기를 자유롭게 결정하고, 임신·출산을 위한 안전한 환경을 보장받을 권리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녹색정의당은 이번 총선 공약집 등에서 22대 국회에서 여성의 성·재생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임신중단 약물 도입을 통한 선택권 확대 △임신중단 시술 방법과 지침, 임신중단 상담서비스 표준화 등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비롯한 나머지 9개 원내 정당은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낙태죄 대체 입법을 위한 그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형법의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하고, 2020년 12월31일까지 형법을 개정할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 헌재의 이런 결정 취지를 수용해 21대 국회에선 형법 개정안(정부안 포함 6개)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정부안 포함 7개)이 발의됐으나,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으며 국회 임기 종료로 폐기될 상황에 놓였다. 낙태죄 효력 상실로 이와 연계된 모자보건법상의 인공임신중절 허용한계 역시 효력이 상실됐지만, 국회와 정부가 직무를 유기하면서 여성들은 임신중지 시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잘못된 정보’를 얻었다가 피해를 보는 등 여전히 성적 자기결정권을 안전하게 행사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김선혜 이화여대 교수(여성학과)는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은 여성의 건강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며 정치권에 관련 입법을 촉구했다. 유랑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비롯한 대부분의 정당들이 성·재생산권 보장 방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저출생’ 공약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여성의 임신·출산을 기본적인 건강권 측면에서 생각하지 않고, (출산율 제고를 목표로 하는) 인구정책 수단으로만 보고 있는 것 같아 굉장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낙태죄’ 위헌 결정 이후, 21대 국회 법 개정 논의 어떻게 진행됐나…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결정 이후, 21대 국회에선 형법 개정안 6건과 모자보건법 개정안 7건이 발의됐다.

형법 개정안은 크게 ‘낙태죄 처벌 규정을 폐지’하는 법안과 ‘낙태죄 처벌 규정을 유지하면서 임신중지가 가능한 임신 주수를 제한’한 법안으로 나뉜다. 김선혜 이화여대 교수(여성학과)는 임신중지가 가능한 임신 주수를 제한하는 후자의 방안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임신 주수를 제한하면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서, 건강상의 이유로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아서, 임신중지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주변에 없어서, 또는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갈 수 없는 직장 문화 때문에 제때 임신중지를 하지 못하는 여성은 더욱 취약한 상태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제대로 된 찬반 토론에도 부쳐지지 못했다.

정부가 낸 법안을 포함한 6개의 형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된 것은 2021년 2월15일이었다. 헌재가 법을 바꾸라고 제시한 입법 시한(2020년 12월31일)을 두 달 가량 넘긴 시점이었다. 법사위는 이후 올해 1월까지 49차례의 법안심사소위가 열렸지만, 이 법안들은 단 한 차례도 심사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다.

모자보건법 쪽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7개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에는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법안과 ‘임신중지에 관한 정보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기관을 설치’하는 법안, ‘임신중지에 보험급여를 적용하거나 의료비를 지원’하는 법안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법안들은 지난해 9월20일이 돼서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돼 12월18일까지 석달 동안 세 차례 심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정부·여당과 야당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논의가 멈춘 상황이다.

야당 쪽은 유산유도제(임신중지약) 도입을 위해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임신중지에 관한 보건의료 정보 제공과 종합 지원이 가능하도록 모자보건법을 먼저 개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처벌법인 형법이 먼저 개정돼야 한다는 논리로 반대했다. 임신중지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관한 관점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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