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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정남구의 경제 톡
대파 무관세 수입 여파

“대파값 875원 합리적’ 발언 후
가격하락 예상 상인들, 매입 중단”
수입량 늘고 출하량도 확대되자
“밭 갈아엎을 대파 농가 많을 듯”
윤석열 대통령이 물가 현장점검을 위해 지난달 18일 서울 양재 하나로마트 채소 코너를 찾아 대파를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티브이(TV) 드라마에서 출연자가 장을 보러 갔다 오는 길임을 시청자에게 알려주는 시각적 장치가 있다. 대파의 윗부분이 삐져나온 장바구니를 보여주는 것이다. 대파는 거의 모든 한식 요리에 재료로 쓰이는 양념 채소다. 배추와 더불어 장바구니 물가를 체감하게 하는 대표 품목이다. 그 대파 값이 폭등해, 여파가 난리도 아니다.

지난 3월7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집계를 보면 서울의 대파 상품 1㎏ 평균 가격은 3948원이었다. 평년 2596원에 비해 52%나 비쌌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대파 한단 가격이 7천원이었던 사실은 알고 있느냐?”

신주호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 대변인은 3월25일 논평에서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2021년 3월에는 대파값만 폭등했을 뿐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에 머물렀다. 대파는 물가지수 가중치가 전체 1천 가운데 0.9에 불과한 품목이다. 값이 갑절로 뛰어도 월평균 소비지출이 279만2천원(2023년)인 우리나라 가계가 한달에 2513원 더 부담하게 될 뿐이다. 문제는 대파뿐 아니라 수많은 품목의 가격이 함께 뛰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대파 가격은 물가고를 상징할 뿐이다.

국힘 “문 정부 시절 대파 7천원”…당시 대파값만 폭등

물가는 정치적으로 의미가 큰 경제지표다. 경제지표와 대통령 국정지지도 간 관계에 대한 연구(배형석·양성국, ‘한국 대통령 지지율과 경제변수’)를 보면, 1993∼2019년 대통령 지지율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력을 미친 경제변수는 물가(근원물가상승률)와 금리(한국은행 기준금리)다. 금리를 끌어올리는 것은 물가 상승이므로, 물가가 더 핵심 변수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2022년 5.1% 오르고, 2023년 3.6% 올랐다. 올해 들어서는 3월 조사에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상승률이 낮아지고는 있다. 하지만 물가 상승 부담은 쌓이는 것이다. 일정 기간 가계의 소득 증가율이 물가상승률을 밑도는 만큼 실질소득이 감소한다. 그것이 물가고의 크기라 할 수 있다. 올해 들어 물가상승률이 3%대 초반까지 내려왔어도 물가고를 더욱 심하게 느끼는 것은 2022년과 2023년 실질임금·실질소득이 줄어든 가계가 많기 때문이다.

물가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정부는 상당한 돈을 쓰고 있다. 유류세 인하가 대표적이다. 2021년 11월부터 시작한 유류세 인하는 그동안 8차례나 연장됐다. 유류세 인하로 인한 세 감면 규모는 연간 8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에도 적자를 감수하고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억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소비 총액이 연간 1천조원이 넘어 이런 거액의 지원으로도 물가상승률은 1%포인트도 낮추지 못한다.

지난해 정부는 반도체 경기 회복과 함께 2023년 하반기에는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물가상승률도 점차 낮아지고 기준금리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낙관적 전망 아래 공격적인 ‘부자 감세’를 실시하면서 재정지출은 극도로 억제했다. 정부의 기대와 전망은 빗나갔다. 고물가·고금리는 오래가고 있다. 재정에 여유가 없는 정부는 별다른 대응을 못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 들어 1월2일부터 24차례 ‘민생토론회’를 열어 사실상 총선 공약을 수도 없이 발표했지만 ‘깎아준다, 지원한다, 개발한다’가 대부분이고, 민생 현실에는 다가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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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말 한마디에 대파 매입 중단”

정부의 물가·민생 대책은 기업을 압박해 일부 가공식품 품목 가격을 내리게 하고, 대파와 사과 등 농산품 소매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에 집중됐다. 3월15일 ‘1500억원 규모의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 투입 조처를 밝혔다. 약간의 효과를 냈다. 그런데, 1500억원 투입 발표 사흘 만에 윤 대통령이 서울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찾은 자리에서 ‘대파 한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말한 게 여론에 불을 질렀다. 1500억원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함에도 윤 대통령이 마치 ‘그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듯 생색을 내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무기한으로 투입하고 지원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대파나 사과 같은 대표 품목의 소매가격은 지속적으로 낮추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3월 품목별 소비자물가를 보면, 파값은 전달보다 14.2% 떨어졌다. 그러나 물가지수 비중이 훨씬 큰 석유제품 가격이 슬슬 오르고, 원-달러 환율이 상승해 수입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이렇게 물가 불안이 이어져서는 금리도 낮추기 어렵다.

정부가 대파값을 떨어뜨리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짓밟히는 민생도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집계를 보면, 대파 수입량이 지난해 11월부터 급증하고 있다. 11월 5514t으로 평년(최근 5년간 연간 수입량의 최대·최소를 뺀 평균 물량) 대비 42.2% 늘어났고, 올해 1월에는 6779t으로 평년 대비 72.8%나 늘었다. 정부는 1월에 설 물가 관리를 위해 수입 대파 3천t까지 관세를 면제했고, 4월부터 추가로 3천t을 무관세로 수입한다. 3월 하순부터 서울 가락시장에서 수입 대파의 도매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국내산 소매가격도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가격정보를 보면, 4월4일 기준 대파 한단(1㎏) 값은 2490원으로 평년 가격(2698원)을 7.7% 밑돈다.

대파 수입 증가와 별개로, 5∼6월에 출하하는 봄 대파 재배 면적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농업관측센터는 ‘3월 농업관측’에서 지난해에 견줘 10.3%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배 농가는 수입 급증에다 올봄 대파 생산량 증가가 겹쳐, 대파값이 폭락할까 봐 불안에 떨고 있다. 그동안 주기적으로 반복됐던 일이 올해는 재현될 것 같다는 것이다.

대파의 주요 산지는 신안·진도·영광 등 전라남도 일대다. 곽길성 전남겨울대파협의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파값이 875원이면 합리적’이라고 발언한 다음날부터 상인들이 대파 가격의 하락을 예상하고, 수확을 앞둔 대파의 매입을 전면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약재배 35%를 제외한 나머지 대파 재배농 가운데는 밭을 갈아엎을 사람이 많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길게 보고 농산물의 합리적인 수급 조절책을 강구하지 않고 가격 급등 때 낮추기에만 치중하면서 대파값은 널을 뛰고, 소비자와 재배 농가 사이에 분노가 시소게임 하듯 오간다.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한겨레 경제부장·도쿄특파원을 역임했다. ‘통계가 전하는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오래 경제 해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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