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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남창훈의 생명의 창으로 바라본 사회
생명의 쓸모

‘변형·조작’ 생명공학 비약적 발전
‘유전자가위’ 인간 탄생 수준까지
경제적 욕구가 추동하는 위험성
민주적 공론 거치며 숙고해야
2012년 11월 멕시코 촐룰라시에서 연설하고 있는 미국의 생물학자 크레이그 벤터. EPA 연합뉴스

생명은 쓸모 있는 것인가? 2008년 영국 의회에서 이와 관련된 민감한 법안을 놓고 표결을 했다. 당시 영국에선 골수암에 걸렸거나 선천적 기형 등으로 특정 장기의 비가역적 손상이 진행된 아이에게 장기를 이식해주려고 부모가 새로운 자녀를 갖고자 하는 경우가 있었다. 장기 이식을 전제로 조직적합성 항원이 일치해야 하기에 이를 위해 반드시 시험관 수정을 통해 자녀를 잉태해야 했다. 시험관 안에서 수정이 이뤄진 배아 중 조직적합성 항원이 아픈 자녀의 그것과 일치하는 배아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형제 구조자와 관련된 시술’이었고 영국 보수당과 생명운동 관련 시민단체에서 이를 금지시키는 법안을 상정했지만 의회에서 부결됐다.

이 사건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졌다. 새로 태어나는 자녀의 생명에 대한 자율권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 맞춤형 배아를 얻기 위해 나머지 수정된 여러 배아들을 버리는 행위는 타당한가? ‘생명의 쓸모’를 논하는 데까지 도달한 것이다. 1972년 유전자재조합 기법과 관련된 논문들이 발표된 이래 50여년이 흘렀다. 그사이 우리는 생명체를 유전자 수준에서 다양하게 변형시키고 그 결과 여러 유익을 얻고 있다. 대장균·효모·쥐·돼지·젖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많은 종류의 생명체들이 이러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생명의 활용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시대 한복판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생명체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휴먼 게놈 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끝낸 미국의 생물학자 크레이그 벤터는 21세기 초 인간 게놈 유전자의 특허 출원을 시도하기도 했다. 인체 정보의 쓸모가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생명공학이 이윤에 몰입된다면

생명을 도구로 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앎의 범위가 확장되고, 그들을 변형하고 조작할 기술이 발달하면 그에 비례해서 쓸모에 대한 궁리 역시 커진다. 일산화탄소를 먹고 에탄올을 배출하는 오토에타노게눔이라는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합성생물학 기법으로 편집하여 아세톤을 생산하도록 바꿔 쓸모 있는 바이오 연료를 얻어낸다. 유전자 재조합 기법으로 박테리아 유전자에 인슐린이나 일부 백신처럼 쓸모 있는 유전자를 삽입해 다량으로 생산한다. 2012년 유전자편집기술인 크리스퍼-카스 기법이 세상에 소개되자 다양한 응용 실험이 이뤄졌고, 2018년 중국의 허젠쿠이 박사는 인간 배아에 이 기술을 적용하여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비활성화시킨 상태로 쌍둥이 소녀를 탄생시켰다. 또한 유전자편집기술은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개체, 즉 쥐와 같은 유해 동물이나 모기 등을 빠른 속도로 절멸시킬 수 있는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로 이어져 몇몇 나라에서 현안에 적용되기 위해 논의되고 있다.

생명의 쓸모와 관련된 문제는 ‘과학을 통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세계와 인간을 바꾸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사이의 긴장의 문제다. 과학은 인간, 그리고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날이 갈수록 더 치밀하며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과학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넓혀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넓혀진 인식의 지평’은 그 자체로 그치지 않고 세계를 바꾸고 인간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구와 연결된다. 이처럼 세계에 대한 인식은 세계를 바꾸고자 하는 욕구와 손잡으며 서로 추동하거나 이끌면서 발전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생명의 쓸모는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의 속도와 내용을 제어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에 달려 있다.

과학 탐구는 호기심에 부푼 어린아이가 눈앞에 놓인 여러 문들을 열면서 처음 들어가본 방 안에서 처음 접하는 여러 물건에 경탄하는 상황과 닮아 있다. 근대 과학이 발생하던 시기에는 주로 탐구자의 호기심이 어떤 문을 열지를 결정했다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여러 욕구가 더 강력한 결정권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는 경제적 이윤 달성을 통해 실현된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경제는 사적·공적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들 사이의 긴장과 상호작용을 통해 운영된다. 그런데 사적 영역이 지닌 핵심적 속성은 현재 발생하는 이윤에 집중하고, 사적 독점을 미덕처럼 추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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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위한 쓸모’ 궁리하는 일

바로 이러한 면모는 생명의 속성과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생명은 진화적 규모의 시간이 작동하여 그 명맥을 유지한다. 생물안전성은 그런 의미에서 ‘생명 지속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박테리아가 되었건 옥수수가 되었건 인간의 배아가 되었건 어떤 생체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그럴 능력을 확보하는 것 말고도 그러한 변화가 먼 미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충분히 성찰하는 일이 요구된다. 우리 사회는 유전공학의 놀라운 발전에 환호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할 사회적 논의 체계와 안목이 있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유전자 드라이브로 모기를 없애는 일은 미래에 잠재적 위험을 만들 가능성이 있는가? 유전자재조합작물(GMO)을 상용화하는 과정에서 종의 다양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무엇인가? 질병 치료에 투입하는 재원과 질병 예방에 투입하는 재원은 어떤 비율로 조정되어야 하는가?

생명은 또한 서로 연결된 채로만 존재할 수 있는 공적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다음 질문도 던져야 한다. 어떤 생명 개체의 변형은 다른 생명 개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생명의 공공성을 보장하면서 기업·개인의 사적 이윤을 어디까지 보장하는 것이 타당한가?

생명의 쓸모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에 너무 부족해 보이는 두가지 영역이 있다. 첫째는 생명의 사회적·윤리적 위상과 상호 연관 및 생태계 네트워크 등과 같은 거시적 성찰을 다루는 영역이고, 둘째는 생명에 관련된 의제를 기업이나 과학자가 독점하지 않게 하는 민주적 공론 체계나 절차의 영역이다. 생명의 쓸모와 관련된 이슈들은 거대한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다. ‘쓸모 있는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을 위한 쓸모’를 궁리하는 일이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서울대와 프랑스 퀴리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생화학·면역학 등을 공부했다.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수용체 개발, 노화와 면역 사이의 연관 등을 연구하면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부단히 모색 중이다. ‘탐구한다는 것’, ‘이타주의자’, ‘소년소녀, 과학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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