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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성의 욕망하는 공예
공예 수업
꽃잎을 물감처럼 사용해 그림 그리듯이 수업하는, 황예지 작가의 ‘보태니컬다잉 꽃잎 워크숍’.

세상에 없던 것을 내 손으로 창조해내는 기쁨을 느껴보기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일단 그럴 만한 기회가 거의 없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에스엔에스(SNS)에서 후기를 찾아보고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그만이다. 이런 ‘신뢰 사회’가 또 있었나 싶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 보내주는 이를 믿고 대부분의 생활용품을 구입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내가 사용할 물건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일이 ‘창조의 기쁨’이라는 표현까지 할 만큼 즐겁고 뿌듯하다는 거다.

20여년 동안 기회가 닿는 대로 온갖 클래스를 찾아다닌 이유도 이런 쾌감이 있어서다. 리본 공예를 배워 딸이 있는 지인들에게 리본핀을 한아름 선물하고, 뜨개질을 배워 어디서도 팔지 않는 두꺼운 스웨터를 만들어 한파를 이겨냈다. 좋은 실로 직접 뜬 니트 스웨터는 같은 소재의 브랜드 옷보다 훨씬 따뜻하다. 뜨개질 선생님도 희한하게 그렇다고 일러주었다. 더 좋은 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어린 시절 엄마가 뜬 스웨터를 입고 겨울을 보냈던 온기 어린 기억이 떠올라서 마음마저 훈훈해지는 것이리라.

성인에게도 필요한 오감 자극

세상 모든 것들이 나만 공격하는 듯한 절망감에 허우적대던 시절에는 무심결에 신청한 식물 키우기 수업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 8주 동안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화분에 옮겨 심고, 가지와 잎을 정리해 단장하는 방법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배양토와 마사토를 적절하게 섞어 뿌리가 든든하게 뻗을 수 있는 흙을 마련하고, 물을 넘치게 주지 않으며,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어주며 식물을 돌보는 일은 스스로를 아끼고 돌보는 일과 같았고, 그렇게 식물과 나를 함께 챙기는 치유의 방법을 터득했다.

직업을 갖기 위한 공부에 열중하다 보니 삶의 태도를 갖추는 배움이 부족했다. 그런데 내가 선택한 직업은 잘 사는 방법을 찾고 알려주는 잡지를 만드는 일.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노릇이니 빠른 시간에 영감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각종 클래스를 좋아했다. 학교를 떠난 어른에게도 유치원 공작 시간 같은 수업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재료의 다양한 촉감과 냄새·색감·소리를 접하고 경험함으로써 오감을 자극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며 창의성과 응용력을 키우는 일은 아이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굳어가고 있는 머리와 심장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고 큰 성취감도 선사하는 공작 수업이 성인에게도 효과가 크다. 아이들이 자기가 가지고 놀 장난감을 신나게 만들 듯 내가 필요한 물건을 손수 만들 때 그 효과와 즐거움은 배가 된다. 나에게는 공예품을 만드는 클래스가 그랬다.

흙의 부드러운 질감을 기분 좋게 느끼며 만들었던 분청자기 편병.

처음 소개할 공예 수업은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했던 찰흙 놀이를 떠올리게 하는 도자기 만들기다. 현재 재학 중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미래유산대학원의 전통공예미술 수업을 통해 제대로 경험했다. 흙덩어리를 손바닥으로 굴려 길게 뽑아 층층이 쌓아가는 코일링 기법으로 앞뒤가 평평하게 눌린 편병 기형을 만들었다. 문양은 평소 좋아하는 윤형근 화백의 단색화를 오마주해 새기고 백토를 바르고 유약을 입혀 굽는 분청 기법으로 마무리한 뒤 흙가마에서 구웠다.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청화백자를 이해하기 위해 미리 성형해둔 접시에 길상 문양인 석류를 푸른색의 코발트 안료로 그리는 과정도 직접 했다. 내가 경험한 건 대학원 수업이었지만 개인 공방에서 작가들이 진행하는 좋은 수업이 꽤 많다. 초보라면 손으로 빚는 핸드빌딩으로 기초를 다질 수 있고 물레 수업도 도전할 수 있다. 본인 실력이나 솜씨가 부족하다고 주눅 들 필요 없다. 숙련된 작가의 도움으로 꽤 그럴싸하고 쓸모 있는 도자기를 완성할 수 있을 테니. 무엇보다 흙을 만지고 기형을 빚는 감촉은 아이들이 슬라임을 만지는 것과 비슷하다. 마음이 간질간질하고 말랑말랑해지는 그 기분을 꼭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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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칠 놀이처럼 즐거운 천연 염색

꽃잎을 이용한 천연 염색 수업은 하얀 비단에 다양한 색의 꽃잎을 뿌린 뒤 손으로 짓이기는 과정이 색칠 놀이하듯 즐거웠다. 정답도 없고 지켜야 할 규칙도 없이 자유롭고 천진한 작업이 순수하기 그지없다. 꽃잎에서 스미는 자연의 물감은 비단에 닿아 인상파 그림 같은 문양을 남긴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염색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1시간 남짓 천을 삶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때 클래스를 이끌어준 작가와 나누는 대화도 봄꽃처럼 반갑고 그윽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수업은 ‘보태니컬다잉 꽃잎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황예지 작가가 진행한다. 꽃시장에서 재료를 구입할 때도 있지만 동네 꽃집에서 폐기할 꽃을 받아와 재활용하기도 한다는 말에 이 수업이 더 근사해졌다.

단단한 나무를 깎아 작은 빗자루를 만드는, 이수빈 작가의 ‘빗자루 생활 워크숍’.

마지막은 목공 수업이다. 단단한 호두나무를 깎아 내 손에 맞춤으로 모양을 다듬고 말총을 꽂아 작은 빗자루를 완성했다. 이수빈 작가는 힘들이지 않고 쓱쓱 조각하며 시범을 보였는데 직접 해보니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대패와 조각칼을 사용하는 요령이 부족해서 처음에는 헤맸지만, 하다 보니 무아지경으로 몰입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했다. 평평한 면과 날카로운 모서리를 매끈하게 깎아내는 우드카빙의 매력을 경험하며 마음의 모서리도 깎아내듯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덤으로 평생 친구가 될 ‘반려 빗자루’도 데려왔으니 알찬 수업이다. ‘빗자루를 어디에 쓰냐’며 궁금할 수도 있다. 그러나 키보드 자판 사이와 액자 위 먼지를 쓸 때, 책상 위 지우개 가루를 치울 때, 차를 마시며 찻가루가 흩어졌을 때 등 빗자루가 없을 때는 몰랐는데 생기고 나니 쓰임이 자꾸 늘어난다. 이수빈 작가가 ‘빗자루 생활’ 워크숍을 소개하며 쓴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손수 만든 물건으로 생활을 채우는 기쁨을 함께 느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박효성 리빙 칼럼니스트

잡지를 만들다가 공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우리 공예가 가깝게 쓰이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가꿔주길 바라고 욕망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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