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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부산 영도구 청동숯불갈비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공무원들에게 물었습니다.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불판에서 익고 있는 양념돼지갈비. 김영동 기자

“행님. 잘 알려지진 않았는데, 맛있는 음식 가게 아는 데 없능교?”

“요새 그런 집이 어뎄노? 아~ 있다 있어. 고깃집도 개안제? 거(거기) 가자. 돼지고기 묵으러.”

지난 4일 부산 영도구청에서 만난 20년차 공무원 윤아무개(49) 팀장한테 숨겨진 맛집을 알려달라고 하니, 별다른 고민 없이 곧바로 돼지갈비 가게를 추천했다. 전국에서 꽤 이름 높은 초량동의 유명 돼지갈비도 아니고 영도에서 돼지갈비라니 의아했다. 하지만 기자가 27년 동안 알고 지낸 ‘형님’인 그는 학생 때부터 몸에 좋은 음식과 맛집을 골라 찾아다닌 인물이기에 관심이 동했다.

“바다(우럭탕) 생각나서 물어봤드만, 종목을 땅(돼지)으로 바까뿌네. 엥간하이 괜찮나 봅니더?”

“아이고, 문디야. 그나마 점심이니깐 지금 가도 자리가 있을끼다. 저녁에 가면 짤 없이 줄 스야 된다. 마, 내 믿고 따라온나.”

부산 영도구에 있는 청동숯불갈비. 김영동 기자

영도구청에서 500여m가량 떨어진 청학삼삼공업단지 쪽으로 향했다. 부산항 북항을 배경으로 수리조선소가 일렬로 펼쳐진 풍경과 함께 돼지갈비 전문점 ‘청동숯불갈비’가 눈에 띄었다. 가게 안은 여느 고깃집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35년 전통 돼지갈비 맛집이라고 한다. “어서오이소. 며칠 전에 봤는데, 오늘 또 뵙네예.” 가게 주인 김병연(56)씨가 윤 팀장을 보고 웃으며 반겼다.

가게 안 구석진 자리에 앉은 뒤 메뉴판을 살폈다. 양념 돼지갈비, 돼지생갈비, 된장찌개, 밥, 냉면, 주류가 전부다. 관심이 가는 것은 돼지생갈비. “양념 돼지갈비 가게에서 생갈비라니, 고기 (신선도)가 끝내주는 가배요.” 속으로 할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무안함을 뒤로 하고 돼지생갈비 2인분과 양념돼지갈비 2인분을 주문했다.

부산 영도구에 있는 청동숯불갈비 상차림. 김영동 기자

곧이어 파무침, 백김치, 배추김치, 마늘, 쌈장, 소금 등 상차림이 완료됐다. 빨간색 살코기와 흰색 비계가 적당히 섞인 돼지고기와 양념에 버무려진 돼지고기가 등장했다. 선홍빛 고기는 문외한인 기자가 봐도 신선해 보였다. 뜨거운 불판에 두꺼운 돼지생갈비를 올리고 조금 기다리니,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이내 고기가 적당히 구워졌다.

“고깃결에 따라 세로로 자르지 말고, 가로로 잘라야 합니더. 그래야 살코기와 비계 비율을 적당히 맞춰지고 더 맛있어예.” 사장 김씨의 조언대로 고기를 가위로 잘랐다. 이어 상추과 깻잎을 겹쳐둔 뒤 돼지생갈비 두어점을 얹고 마늘과 땡초, 쌈장, 파무침 등을 올려 쌈을 싸 먹었다. 마늘과 땡초의 알싸함과 개운함, 쌈장과 파무침의 짭쪼름함, 두꺼운 돼지생갈비의 육즙이 어우러졌다. 상추와 깻잎의 깔끔함이 끝 맛으로 느껴졌다. 쌈 싸기가 귀찮아지면 굵은 소금을 숟가락으로 꾹 눌러 빻은 뒤 고기를 찍어 먹기도 했고, 잘 익은 백김치에 싸 먹기도 했다.

“돼지고기가 싱싱해야 생갈비를 할 수 있습니더. 국산 새끼 암퇘지만 취급하고예. 거기에 살코기와 비계가 좋은 비율로 섞일 수 있도록 고기 뜨는 법도 따로 있습니더. 당연히 비법은 알려줄 수 없죠. 손님들이 어릴 적 먹던 돼지고기 맛이라고 좋아합니더.” 고기 뜨는 방법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육즙이 넘치는 맛 난 돼지생갈비를 직접 먹어보니 사장 김씨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제는 양념 돼지갈비를 먹을 때다. 무쇠 불판에서 얇은 철사를 그물처럼 엮은 불판으로 바뀌었다. 불판 차이가 양념 갈비 맛을 더 돋운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양념에 담가진 돼지갈비를 집게로 들어 올려 불판에 올려놓고 고기가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돼지고기와 관련해 부산에서 전국적 명성을 얻는 음식은 ‘초량 돼지갈비’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우방국으로부터 다양한 물자 원조를 받던 그 당시 부두 노동자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다. 부산항을 통해 원조 물자들이 들어왔었기에 일감이 많은 부두 노동자들은 당시 꽤 잘 벌었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동구 초량동 산복도로 마을에 살았고, 자연스럽게 초량시장 시장 근처에는 여러 식당이 자리 잡게 됐다. 부두 하역은 강한 체력이 필요한 중노동이라 이들은 저렴하면서도 영양이 높은 음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1960년대 몇몇 음식 가게에서 도축하고 남은 돼지부산물 등을 연탄불에 구워 팔았고, 이것이 초량 돼지갈비의 시작이었다.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부산 최고의 음식으로 꼽혔지만, 생활 수준이 올라가고 다양한 외식문화가 발달하면서 돼지갈비는 쇠퇴했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인지, 2010년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과 함께 부산 대표 음식으로 다시 소개됐고, 갈비를 재우는 방법이나 양념 배합 비법이 남다른 곳은 지금도 관광객 등이 몰린다.

초량과 떨어진 영도의 이 음식 가게도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한 초량 돼지갈비 가게에 견줄 만 하다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김 사장은 유명한 초량 돼지갈비 가게 주방장이었던 친척의 도움이 있었다고 이실직고(?)했다. 청동숯불갈비가 영도 수리조선소 근처에 문을 연 것은 1989년. 10평짜리 가게에 탁자는 7개 정도였다. 상권 파악 등 별다른 분석이나 고민 없이 집 근처에 가게 문을 열었는데, 유명 초량 돼지갈비 가게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던 친척을 모셔왔다고 했다. 이후 사장 김씨의 어머니가 어깨너머로 양념과 고기 재우는 법 등을 배운 뒤 나름의 ‘레시피’를 만들어냈단다.

숯불갈비 식당 주방. 김영동 기자

가게 뒤쪽에 있는 수리조선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입소문이 퍼졌고, 단골들이 생겨나면서 영도에서 유명해졌다. 2016년 12월 50여m 떨어진 지금의 장소로 확장 이전했다.

“고기 다 익었다. 묵자.” 적당하게 익은 두툼한 고기 한 점을 양념장에 담근 뒤 깻잎과 구운 마늘에 싸서 입에 넣었다. 씹을 때마다 흘러나오는 육즙의 고소함과 고기에 밴 양념의 달콤함이 느껴졌다. 파무침을 고기에 얹어 먹으니 파의 상쾌함이 고기와 잘 어울렸다. 다양한 장아찌도 곁들여 먹으니 기름진 식감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기를 먹은 뒤 후식은 물냉면을 먹었다. 젓가락으로 면발을 말아 후루룩 삼킨 다음 양념 돼지갈비를 한 점을 꼭꼭 씹었다. 이후 차가운 냉면 육수를 들이켜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부산에 살면서 나름 여러 돼지갈비를 먹어봤지만, 이곳은 한 손가락에 꼽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도 주민만 알고 추천하는 돼지갈비 집이다이가.” 가게에서 나오면서 기자가 맛난 돼지갈비 집이었다고 칭찬하자 윤씨가 말했다. 이어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너무 알려지면 안 되는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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