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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멘터리에서는 슬펐던 과거 이야기보단 그동안 제가 어떤 일을 했는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유가영씨(26)는 세월호 생존자다. 그리고 4월 방영이 무산된 KBS의 세월호 10주기 다큐의 주인공이었다. 가영씨는 지난해 12월부터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진과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2월에 돌연 ‘제작이 중단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4월18일 방영 예정인 다큐가 4월10일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서였다.

가영씨가 KBS 다큐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은 그저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세월호 10주기를 약 한 달 앞둔 지난달 18일 만난 가영씨는 “10년 동안 제가 무엇을 했고, 지금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생존자 유가영씨(26)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준서 · 모진수PD


세월호 생존자 가영씨의 지난 10년

가영씨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 중 1명이었다. ‘잡아줄 테니 같이 나가자’는 친구를 따라 기울어진 선실을 빠져나왔고 헬기로 구조될 수 있었다.

가까스로 일상에 돌아왔지만 가영씨는 오랜 시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 받았다. 학교 수업에도 좋아하던 책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매일같이 가던 학교 도서관에도 발길이 가지 않았다. 당시 가영씨와 함께 도서부 활동을 했던 많은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스스로 폐쇄병동에 입원했다. 가영씨는 “그때는 제 주변의 모든 것이 안전하지 않게 느껴졌다. 언제 어디서든 나한테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항상 불안했다”고 밝혔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가영씨는 시간에만 기대진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이 흘러 나아지길 바라는 것을 싫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단원고 동창들과 비영리단체 ‘운디드힐러(상처 입은 치유자)’를 만들었다. 가영씨는 운디드힐러에서 활동하면서 트라우마에 대한 인형극을 만들고, 2022년에는 강원 동해시 산불 피해 현장에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했다.

항상 불안하고 무언가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자신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훌쩍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뉴질랜드에서는 딸기 농장에서 일했는데, 손이 빠른 가영씨는 금세 그곳에서 일을 제일 잘하는 직원이 됐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을 펴냈다. 가영씨가 쓴 책의 제목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는 제작이 중단된 KBS 다큐의 가제이기도 했다.

안산 단원고 4.16기억교실에 걸려있는 달력. 백준서 · 모진수PD


씩씩한 가영씨의 꿈

가영씨는 지금도 가끔 악몽을 꾸고 불안해하고 우울증약을 먹는다. 하지만 그 모습이 가영씨의 전부는 아니다. KBS 다큐에서도 슬픈 과거보다는 미래를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영씨의 꿈은 비영리단체(NGO) 재난구호 활동가가 되는 것이다. 동해시 산불 피해 현장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경험이 진로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 재난 현장에 가거나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이 힘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상하게 위로받는 기분도 든다. 가영씨는 “어쩌면 제가 힘들었을 때 받지 못했던 위로와 격려를 다른 사람에게 해주면서 저 자신도 위로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4월에 KBS 다큐 방영이 무산된 것이 가영씨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됐을 법도 한데, 가영씨는 KBS 제작진에게도 되려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가영씨는 “KBS PD님이 저한테 너무 미안해하셨는데, 사실 제가 더 미안했다”며 “PD님이 세월호에 대한 다큐를 찍지 않으셨으면 이런 부조리를 겪지 않으셨을 것 같다”고 밝혔다.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KBS가 세월호 10주기 다큐 제작을 중단한 것에 대해 가영씨는 “거기에 동의할 수 있는 국민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KBS는 세월호 10주기 다큐 제작이 중단된 것에 대해 ‘천안함 피격 사건 등을 함께 다루는 것이 당초 기획 취지여서 방영을 연기한 것’이라고 핑계를 대고 있다.

가영씨는 사람들이 세월호를 비롯한 재난을 좀 더 기억해줬으면 한다. 가영씨는 “우리가 조금 더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되짚어 봤으면 좋겠다”며 “나를 지키기 위해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도 재난을 계속 되짚어보고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세월호 생존자 유가영씨(26)가 노트북을 이용해 글을 쓰고 있다. 백준서 · 모진수PD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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