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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0일 오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4·3평화교육센터에서 신원이 확인된 4·3 희생자 유해 2구에 대한 신원확인 보고회가 열렸다. 허호준 기자


허호준 | 전국부 선임기자

“이승만을 ‘대통령’이라고 하면 될거우꽈? (그냥) 이승만이라고만 하면 될거우꽈? 지금도 가장 원한이 남는 게 그 사람이 몇 년형을 내렸으면 기간이 되면 남편을 내쳐야지(석방해야지) 자기네 모음냥(마음대로) 죽일 수가 이수과?”

올해 104살이 된 한 할머니는 2021년 4월2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4·3 직권재심 재판이 열린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할머니가 내뱉은 최대의 분노 표출이었다. 할머니는 4·3 시기 집이 불타고 어린 자식들과 피난길에 나섰다가 남편과 헤어졌다. 100살이 훌쩍 넘도록 남편을 기다리지만, 20대의 남편은 돌아올 줄을 모른다.

제주의 유학자 김경종(1888~1962) 선생은 1950년 ‘이승만 성토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한국전쟁 발발 직후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옛날 항적은 진나라의 항복한 병사 40만을 살해하였다. 만세에 모두 무도하다고 일컫는다. 지금 이승만이 나라 안 죄수 수십만을 죽였으니 그 포학무도함이 항적과 더불어 과연 어떠한가. (중략) 승만의 죄는 천 번 참수하고 만 번 도륙을 내어도 오히려 남은 죄가 있다. 감히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예와 같이 백성의 위에 거한다. (중략) 남한의 수십의 형무소는 차고 넘치어 수십만에 이르고 있다. 북(한)군의 입성에 이르러 ‘부화뇌동할 염려가 있다’고 말하고 급히 학살령을 내렸으니 (중략) 승만의 포학무도가 이에 여기에 이르렀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수십만명이 예비검속으로 죽고, 형무소 수감자들이 집단학살되던 때였다. 그의 아들은 4·3 시기 육지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행방불명됐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2003년 펴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집단 인명피해’ 지휘체계와 관련해 “최종 책임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4·3 항쟁 시기 숱한 제주도민의 죽음 뒤에는 이승만이 있었다는 말이다.

대통령 이승만은 1948년 11월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은 시민권의 제한만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이용됐다. 이 시기 이후 초토화가 가속화됐고, 수많은 비명이 제주섬을 덮쳤다.

군경과 서북청년단은 ‘빨갱이 소탕’을 명분으로 자신들이 규정한 ‘빨갱이’를 없애는 데 용감했다. 마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이웃들끼리 죽이도록 하고, 그 장면을 보도록 강요했다. ‘반인륜적'이라는 표현 이상의 일들이 벌어진 곳이 1948년과 1949년 제주였다.

당시 주한미군사고문단의 보고서를 보면, 1948년 11월24일부터 닷새 동안 9연대는 제주도에서 사살한 인원만 337명이고, 332명을 체포했다. 하지만 이들이 노획한 총은 7정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해 12월13일 토벌대는 경찰과 민간인 등 3천여명을 동원해 하루에만 105명을 ‘사살'했다. 무차별 학살이 펼쳐졌다. 그해 말 9연대의 뒤를 이어 진주한 2연대도 마찬가지로 가혹했다.

숱한 제주도민이 죽임을 당하는데도, 이 대통령은 토벌을 재촉했다. 그는 1949년 1월21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미국이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시하지만 제주도와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라며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같은 해 10월2일 제주비행장(현 제주공항)에서는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249명이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에 따라 집단처형됐다. 제주도 사건이 사실상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249명을 한꺼번에 대규모 처형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언론에는 단 한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제주도는 외부와 단절된 고립의 섬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승만이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승만기념관을 만들고, 이승만 동상을 세운다고 한다. 수많은 제주의 영혼이 울고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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