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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연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정운용 인의협 부산·경남 대표

인의협 소속 의사로는 첫 의협 회장 선거 출마
11만 의사 중 3만여명만 투표, 상식적이지 않아
미·일 의협은 오진율도 발표, 국민과 거리 좁혀야
정운용 인의협 부산경남지부 대표가 지난 달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의협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지난달 26일 마무리 된 42대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선거에선 남다른 이력을 지닌 후보가 한명 나왔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소속으로 의협 회장에 첫 도전장을 낸 정운용(부산·경남 대표)이다. 외과의사 정운용은 부산에서 22년째 노숙인진료소 소장을 맡고 있다. 굴뚝과 크레인 위에서 장기 농성이라도 벌어지면 고립된 노동자들의 주치의를 자처했다. 서울시의사회장(박명하)과 전직 국회의원(박인숙)·의협 회장(주수호),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임현택) 등 다른 후보들이 걸어온 길과 확연히 구분된다.

이력만 남다른 건 아니다. 다른 4명의 후보가 일제히 의대 증원 반대 구호를 외치는 동안, 그는 유일하게 의사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달 넘게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집단사직과 근무지 이탈에 나서는 등 의-정 간 대치국면이 지속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정운용은 1차 투표에서 2.7%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는 말이 나왔지만 악조건 속에 선방했다는 평도 따랐다. 선거가 끝난 바로 다음 날인 3월27일, 서울 종로구 인의협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의협 내부적으로 더 많은 의사들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외부적으론 국민 목 소리에 귀기울여 의사와 국민의 간격을 좁혀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강경파로 꼽히던 후보(임현택)가 당선됐다.

“굳이 말하자면 나 빼고 모두 강경파였다. (정부와의) 싸움이 벌어지면 본래 강경파 목소리가 커지지 않나. 그나마 직전에 이필수 회장은 대화와 타협을 강조해왔는데, 이를 안 좋게 보는 회원들의 표심이 반영된 것 같다.”

―왜 안 좋게 본건가.

“정부와 더 대립각을 세웠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강경파 당선자가 원점 재논의를 넘어 ‘의대 500~1000명 감축’까지 언급했다. 앞으로 의-정 갈등 국면 전망은?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국민 입장에서 얻는 게 전혀 없는 방식의 타협이 이뤄질까봐 걱정이다. 이를테면 증원 숫자는 대폭 줄이고 (의사들을 달래는 명목으로) 의료 영리화 혹은 상업화를 더 진전시키는 방안이 나올 수도 있지 않나.”

―5명 후보 중 득표가 가장 저조했다. 예상한 결과인가.

“솔직히 3~5% 정도 기대했지만 그에 못미쳤다. 의대 증원이 블랙홀처럼 모든 논의 주제를 다 빨아들였다. 그래도 의사 집단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최소한의 발언권을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의협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선거 준비 과정에서 많은 의사들과 만나 토론했다. 한국 의료가 지금 K-의료라는 말까지 나오지만 실제로는 지속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모든 의료기관이 행위별 수가제에 기초해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정부 재정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의료의 틀을 바꿔야 한다. 의협 누리집에 들어가봤나. 처음부터 끝까지 ‘악법 저지 투쟁’의 기록이다. 지금과 같이 권익단체 성격만 강해서는 전문가단체로서의 소임을 다 할 수 없고, 국민 신뢰도 얻지 못한다.”

―정부 정책 반대만 외쳤다는 의미인가.

“의료개혁에 동참하거나 보조를 맞출 때도 있어야 하는데, 일관되게 반대 투쟁만 해서는 국민을 설득할 수도 없고 전체 의사를 대변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단적으로 ‘수가 깔대기’란 말이 있다. 모든 것을 수가 문제로 환원시킨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코로나 환자 진료를 하라고 하면 수가부터 올려야 한다는 식이다. 이런 방식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동안은 왜 후보를 내지 않았나.

“의사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람이 의협 회장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2000년 의약분업 사태를 계기로 확산됐다. 낮은 진료 수가로 병원을 경영하기 어렵다며 약가마진으로 수익을 보전해온 의사들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인의협은 당시 의협 투쟁 기조와 반대로, 의약분업에 찬성했고 의사 파업에 반대했다. 그 여파로 의사 사회 내에서 ‘빨간 딱지’가 붙었다. 심지어 인의협 내부에서도 상당수가 의약분업 반대 투쟁에 참여하면서 회원 수가 급격히 줄었다. 240명에 달하던 부산·경남 회원이 30명 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후로 인의협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의사 사회에서 섞이지 못했다. 5년 전쯤부터 의협 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적극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출마를 고민하게 됐다.”

정운용 인의협 부산·경남 대표가 노숙인 진료를 하고 있는 모습. 그는 22년째 부산 노숙인진료소 소장을 맡고 있다. 인의협 제공

―‘회비납부와 무관한 투표권 부여’ 공약을 냈는데.

“선거 규정상 2년 연속 회비를 내야 투표권이 주어진다. 법정단체인 의협은 의사면허를 가진 모두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지만 회비 납부율은 저조하다. 의협 지도부의 정치화에 실망하거나 국민과 괴리된 의협 활동에 회의적인 이들이 많은 탓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42대 의협 회장 선거에서 총 유권자는 5만681명, 실제 투표 참여자는 3만3684명(1차 투표 기준)에 그쳤다. 전체 활동 의사가 11만5천명 정도인데 절반에도 못 미치는 유권자가 회장을 선출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후보 출마 요건도 까다롭다고 들었다.

“전국구 선거라서 1년 정도 진료현장을 비워야하는 데다 5천만원의 기탁금 규정(10% 미만 득표시 협회 귀속)을 맞춰야 한다. 후보자는 회비 납부도 5년 이상을 기준으로 삼는다. 상대 후보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맷집도 필요하다. 친구들은 ‘말라꼬(뭐하러) 나가노’라며 걱정을 하더라.(웃음)”(지난해 정운용은 의협 회장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진료를 해온 부산 큐병원 공동원장직을 내려놨다.)

―의대 증원에 찬성한 유일한 후보였다.

“고령화로 인해 높아질 의료 수요에 감당하고 지역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서도, 더 빈번해질 팬데믹과 기후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의사는 더 필요하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의사들은 잦은 당직과 밤샘 근무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져 있는 데 이런 현실은 환자들의 안전도 위협하는 요소다. 의사를 늘리고 근무시간은 줄여야 한다.”

―‘나홀로 증원 찬성’으로 선거 때 공격을 받진 않았나.

“사실 공격을 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했던 주장이 엄청나게 과격한 내용이 아니다.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고 본다.”

―왜 그런 목소리는 국민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을까.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장이 열려야 한다. 아까 언급한 ‘회비납부와 무관한 투표권 부여’도 같은 맥락이다. 회원들에게 더 많은 발언권을 줘서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정운용 인의협 부산·경남 대표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 진료 지원에 나선 모습. 인의협 제공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는 비판적이라고 했는데.

“윤 정부는 의대 증원만 하면 누적된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2028년까지 수도권에 빅5 병원의 분원이 설립되고 여기에 6600병상이 증설된다. 지방 의대 증원이 결국 수도권 병원의 전공의를 채우기 위한 것이 될 수 있다.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와 같은 ‘무늬만 지역의대’에 대한 증원도 마찬가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근본적으로 의료가 영리화를 추구하는 시장에 맡겨져 있는 한 정책 변화의 혜택은 일부에만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민간이 나설 동기가 없는 공백은 공공이 메워야 한다. 지역과 공공의료기관에서 일정 기간 진료할 조건으로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

―어떤 해법이 있을까. 의료 취약지역 의사 양성을 위해 도입된 공중보건장학제도의 경우, 지원이 저조해 실효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건 실패한 정책이다. 지역에 공공병원 자체가 없는 상황에선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는 공공의료를 제대로 확충해본 경험이 없다. 지금까지는 돈이 많이 들고 효율은 별로 나지 않는다고 머뭇거려 왔는데, 이제는 그 지점을 우리 사회가 논의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1차 의료가 제대로 자리 잡아야 한다. 지금은 경증 환자를 두고도 의원과 대형 병원이 서로 경쟁을 벌인다. 환자들은 어느 의료기관을 가야 할지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고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잡아야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다.”

―당장은 정부의 2천명 의대 증원안을 두고 대치 국면이 장기화되고 있다. 증원 규모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발단은 의대 증원에 공감하는 이들 조차도 예상해보지 못한 숫자가 나오면서 논란이 커진 것 아닌가. 의사들에게 여건을 따져볼 시간도 주지 않고 무조건 2천명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동의를 구하는 자세가 아니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전공의들도 많이 만났나.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사태와 선거 시기가 겹쳐서 많이 만나진 못했다. 이전에 우리가 젊은 의사일 때랑 비교해보면 투쟁 방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지금은 지도부를 내세우고 그를 통해 요구하고 협상하는 방식이 아니지 않나. 만일 윗선에서 정부와 의사들이 어느 정도 타결을 보더라도 전공의와 의대생이 전부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지 않을까 싶다. 개개인의 생각과 판단이 중요해진 측면도 있고 정부 정책에 대한 누적된 불만도 쌓여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심폐소생술(CPR)과 같은 응급처치를 하는 도중에도 근무시간이 종료되면 다음 근무자와 손을 바꾸고 퇴근한다고 하더라. 처음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너무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이런 분위기가 바뀌진 않을 것 같다. 옛날처럼 젊은 의사들에게 과도한 희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강요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외과의사(밑에서 둘째) 정운용이 2009년 1월21일 울산 동구의 폐기물소각장 굴뚝에서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이 저체온증에 시달리자, 의료기구를 짊어진 채 굴뚝을 오르고 있다. 김태형 기자 [email protected]

―역대 정부에서도 의료개혁 정책이 추진될 때마다 의사들과 갈등을 빚었다. 의사들은 마치 우리 사회의 갈라파고스와 같다는 말도 나온다. 왜 소통이 잘 안되는걸까.

“의학 논문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논리성과 정합성을 따지는 이들인데 사회 문제에 접근할 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라고 어떤 의사에게 물어보니, 우스갯소리로 ‘논문은 보는데 신문을 안보잖아’라고 하더라. 전공의를 비롯한 대형 병원 봉직의들은 일이 너무 많아 사회를 들여다볼 여력이 안나고, 개원의들은 사실상 자영업자로 지내다보니 정부 통제를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이런 분위기가 의협이 보수화되는데 중요하게 작동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의사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어떤 의미인가.

“나 스스로도 대한민국에서 의사로 산다는 것이 그닥 즐겁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운영하는 병원의 수익을 내려면 너도나도 비급여 진료를 많이 해서 해결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한국 의사들의 진료 횟수가 왜 세계적으로 많은 수준이겠는가. 정부가 늘 강조하는 필수의료를 우리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라고 부른다. 이렇게 ‘환자를 보는 의사’(필수의료)가 많아져야 하는데 ‘손님을 받는 의사’(미용·성형)가 늘어난다. 이런 구조는 환자들에게도 피해를 주지만 전문가집단으로서 의사들의 양심도 훼손시킨다. 의사들의 도덕성 문제로 접근해선 안되고 의료의 틀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의사집단은 얼마나 공감하는 이야기인가? 최근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에선 의료가 공공재냐 아니냐는 논란까지 불거졌다.

“그런 설명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는 데 책임을 통감한다. 국민이 아프면 치료받을 권리를 국가가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의사들에게 독점적인 진료 권한을 부여하면서 면허를 발급한다. 의료가 공공재가 아니라면 아무나 진료를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선거 공약에 담았던 내용인데, 의사들의 사회적 책무에 초점을 둔 내용을 의대 교육과 의사 보수교육에 충분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간이 흘러 미국이나 일본처럼 의협이 해마다 오진율을 발표하는 때가 온다면 전문가단체로 거듭나는 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은 국민과 의사가 서로 신뢰하는 관계에 있을 때 가능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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