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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6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앞. 연합뉴스
진짜 ‘의료 개혁’ 위한 연속 기고 ①

전진한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서울은 0명, 비수도권에 82%’ 정부는 2000명 의대 증원 배정을 발표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다음날 조간신문들은 정부 발표대로 일제히 1면을 채웠고 정부가 지역의료에 방점을 뒀다는 말은 사실인 양 여겨졌다. 그런데 제대로 따져보자.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안은 정말 ‘지역’을 위한 것일까?

질문부터 하나 해보자. 울산의대는 울산에 있을까? 울산의대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있다. 대통령이 정원을 늘려주겠다고 수차례 언급한 대표적 ‘비수도권 미니의대’이자 이번에 정원이 40명에서 120명으로 늘어난 울산의대는 강남 한복판에 있다. 이런 사실을 두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했던가.

울산의대는 34년 전인 1990년부터 의대생 교육과 실습을 서울아산병원에서 해왔다. 자연히 졸업한 의사 대부분이 수도권에 남고 단 8%만 울산에서 일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병원이 소개하는 ‘서울아산병원 30년사’에 이런 고백이 나온다. “당시 수도권 인구의 과밀화 억제 정책에 따라 서울과 경인 지방에는 대학을 설립할 수 없었다. (…) 병원 건립과 동시에 의과대학 건립을 추진 중이던 아산재단은 (…) 서울아산병원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육협력병원으로 지정했다.” 병원을 위한 수도권 의대 설립이 좌절되자 울산의대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현대그룹은 ‘지역 의료인력 확보’를 명분으로 울산의대를 허가받았다. 하지만 간판만 울산의대일 뿐, 실제로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교육받는 ‘서울아산의대’로 만들었다. 현대재벌은 의대를 거느린 이점을 활용해 서울아산병원을 국내 최대규모로 키웠다. 반면 지역 유일 의대를 서울에 빼앗긴 울산은 인구 당 의사 수가 전국 최저수준이고 7대 광역시 중 사망률이 가장 높은 도시가 되었다.

이런 ‘무늬만 지역의대’는 울산대 의대만이 아니다. 성균관 의대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근처, 삼성생명 건물에 있다. 창원엔 명목상으로만 부속병원인 창원삼성병원을 두고, 본과 수업 대부분을 삼성서울병원에서 한다. 정부는 이 ‘삼성의대’ 정원도 120명으로 3배 늘려줬다.

건국의대도 충주에 인가를 받았지만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근처로 의대를 이전했다. 충주 실습여건이 열악하다는 핑계를 댔지만 그 현실은 스스로 만들었다. 정작 충주병원 병상을 축소하고 임금을 체불하며 의료진을 감축했다. 이런 건국의대 정원도 이번에 2.5배 늘었다.

‘서울 0명 의대 배정’은 그래서 오보다. 실제로는 서울의 불법 미인가 교육시설 등에서 교육과 실습을 받게 될 의대생을 361명이나 늘려줬다. 비수도권에 몰아줬다는 정부 주장과 달리 늘어난 사립대 정원 1194명 중 수도권에 병원을 둔 의대 증원이 771명으로 64.5%에 달하고 이 중 대부분 무늬만 지역의대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오래전부터 지역 의대를 지역으로 완전히 환원하고, 수도권에서 불법 운영하는 의대는 인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정반대로 가짜 지역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 면죄부를 주고 특혜 처방을 내렸다.

한국 지역의료 붕괴의 역사는 수도권 중심 병원 산업화에 기인했다. 노동·시민사회 운동을 통해 1988년 전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되고 의료 수요가 늘었지만, 정부가 공공병원을 만들지 않아 자본이 병원을 짓고 돈벌이에 나섰다. 재벌을 위시한 민간 자본이 수도권에 터를 잡고 인구가 적은 지역의료를 외면한 것은 당연했다. 정부는 의대 교육도 이들 병원자본과 연계된 사립대에 떠넘겼다. 오늘날 병원과 의대가 수도권에 몰린 근본 원인은 정부가 병원 설립과 의료인 양성 모두를 이윤추구가 최대 목표인 자본과 시장 논리에 맡겨온 데 있다.

정부는 의사들과 큰 대립을 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병원에 의사를 고용하는 재벌병원과 사학재단의 이해와 대립하지 않는다. 정부 의대증원안에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필수적으로 동반되었어야 할 ‘공공의대’ 같은 공공적 의사 양성과 ‘지역의사제’와 같은 의사 지역 배치정책은 없다. 게다가 의료취약지에는 민간병원이 아예 들어서지 않는데도 정부가 직접 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공공의료’는 이 정부에서는 금기어가 되었다.

27년 만의 의대 증원, 정부가 추진했지만 시민들의 열망이 만든 것이다. 그래서 2000명이라는 숫자로 환원되어선 안된다. 방향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진단을 하지 않거나 감추고 내린 잘못된 처방, 무엇보다 공공적 의사양성 방안도, 공공의료도 전혀 없는 이 가짜 ‘의료개혁’은 지역의료를 살리지 못한다. 아마도 대통령이 대파 한단 값에 울고 웃는 지역 주민의 고단한 삶보다 재벌병원과 사학재단들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한 지역의료를 살리는 해법은 나오지 않을는지 모른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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