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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2천여개의 교회, 사찰 등 종교시설이 하나씩 방문 돌봄이나 요양원을 운영하면 어떨까? 종교시설을 수고하고 힘든 고령자와 그 가족을 환대하는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비어 가는 한국 종교계의 희망이 아닐까? 돈에만 집착하는 각개전투 사회를 ‘서로 돌봄’이라는 영성으로 대체하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영전아!” 눈을 번쩍 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가끔 한밤중에 그렇게 부르시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목소리엔 약간의 화, 불안,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허겁지겁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덧입는데, 아! 어머니는 어제 요양원에 들어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믿기지 않아 응접실 건너 어머니 방으로 가서 불을 켰다. 빈 침대 주위에 기저귀 등 요양 물품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돌아와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2년 전 어머니는 약 한달간의 입원을 시작으로 와병 상태에 들어가셨다. 병원비보다 요양비가 더 나온 것도 그랬지만, 간병인이 없으면 입원이 안 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딱딱한 좁은 간병침대에 쪼그리고 누워 잠을 청해야 하는 것은 30년 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옆 침대 암 환자의 가래 섞인 기침이 계속되고 밤새 들락거리는 간호사들과 새벽부터 시작되는 혈당 검사 등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나는 가끔 하는 일이지만, 보름이나 한달씩 집에 못 가고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간병인들은 안 생길 병도 생길 상황이었다.

좋다고 소문난 시립 요양원엔 일찍부터 입소 신청을 했지만 2년이 지난 후에도 대기번호가 83번이었다. 그래서 퇴원 후엔 장기요양등급 2등급으로 시작해 간병방문서비스를 받았다. 하루 4시간 주 5일은 국가가 간병비를 지원해주었지만, 나머지 4시간은 개인이 내야 했다. 그러고도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그리고 일요일 간병은 전적으로 가족의 몫이었다.

나의 간병일지는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힘들었던 것은 기저귀 수발보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시는 어머니의 몸과 행동에서 얼마 후 내 모습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고, 하루에도 몇번씩 화장실 밖에서 멍하니 기다려야 할 때였다. 그때 한 청년 간병인이 만든 “이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는 주문을 반복해서 읊조렸는데, 도움이 되었다.

2025년 대한민국은 인구 5명 중 1명이 만 65살 이상의 노인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현재 1인가구 비율이 34%에 달하니, 지금 바로 좋은 돌봄 체계를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현재 장년층은 역사상 가장 외로운 말년을 맞이할 것이다. 이미 간병살인 등 극단적인 비극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는 민간 간병보험 가입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입소하러 가는 차 안에서 누님은 괜스레 많은 말을 했다. 거기가 제일 좋은 요양원이라느니, 친구들이 많이 있어 심심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이야기는 모든 교회와 사찰이 요양원을 하나씩만 운영하면 우리나라 돌봄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졌다. 현재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요양·의료 기관이 399개, 호스피스 기관이 161개, 복지원 등이 522개다. 이미 많이 하고 있긴 하지만, 7만2천여개의 교회, 사찰 등 종교시설이 하나씩 방문 돌봄이나 요양원을 운영하면 어떨까?

한 조사기관 자료에 따르면, 19~29살 중 종교를 가진 비율이 1984년 36%에서 2021년에는 22%로 줄었다. 30대도 45%에서 30%로 줄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종교계의 고령화 속도는 인류 역사상 최고라는 고령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셈이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성경 속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세운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종교시설을 수고하고 힘든 고령자와 그 가족을 환대하는 공간으로 전환하는, 그 ‘첫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비어 가는 한국 종교계의 희망이 아닐까?

‘사랑이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것이다.’ 철학자 김상봉은 동학혁명에서 광주민주항쟁까지 이 땅에서 정치적 실천이 종교적 운동과 깊이 결합되어 있을 때가 많았고,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퇴행도 바로 그 첫사랑을 잊어서라 강변한다. 돈에만 집착하는 각개전투 사회를 ‘서로 돌봄’이라는 영성으로 대체하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입소 이별은 의외로 짧은 시간에 끝났다. 속내가 복잡하시겠지만, 의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신 어머니가 고마웠다. 요양원에 모셨다고 간병이 끝나는 건 아니다. 딩동! “어머님 습진 연고를 좀 보내주세요.” 본인 증명 때문에 약 하나 받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또 몇번을 더 새벽녘 건넌방에서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머니 입소 며칠 전 누님이 문자를 보내왔다. “엄마 생신날/ 난 엄마 요양원에서 입을 옷 빨고/ 이름표를 달고 있네/ 아이들 학용품에 이름 쓰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가는 세월이 제일 무섭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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