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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주기를 한 달여 앞둔 지난 3일 전남 진도항 팽목방파제 난간에 매달린 고리형 노란리본에 빗물이 맺혀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봄은 돌아옴을 쉬지 않는다. 팽목항 방파제를 따라 줄지어 달린 노란 리본도 찢기고 바래면서 10번째 봄을 맞았다. 아무도 그 리본이 10년을 버틸 줄 몰랐다. 그만 찾아오라 역정을 낸들 바람에 실린 온기를 꺾기란 불가능하다. 계절이 바뀌고 봄이 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없다.

기억도 계절과 같다. 세상을 먼저 등진 딸과 아들, 부모와 배우자, 형제를 잊을 수 있는 이는 없다. 10년 전 그 바다에서의 이별은 더욱 그랬다. 불어 나온 모습에 ‘고통받지 않았구나’ 울고, 온전한 모습에 ‘이뻐 보이려 버텼구나’ 우는 이별이었다. “단장하면 아이들이 빨리 나온다더라”며 어머니가 립스틱을 바르고 기다린 이별이었다. 살아 나오길 기도하다, 아직 구조되지 않은 것이길 바라다, 차라리 죽어 나오길 바란 이별이었다.

지울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그 기억에 돌을 던지는 자들이 있었다. ‘세금 도둑’이라고 비아냥댄 언론, ‘교통사고’라고 못 박은 정치, ‘그만하라’고 비수를 꽂은 댓글이 그들이었다. 애도가 한창일 때 숨어 비죽이던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본색을 드러냈다. ‘좌파라서’ ‘북의 사주로’ ‘돈 때문에’ 같은 천박한 주장을 폈다. 어떤 이들은 짐짓 점잖은 말로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했다. ‘잊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피해자를 향한 비정은 세월호 앞뒤가 똑같았다. 국민을 지키라고 만들어진 정부는 ‘나라 지키다 죽었냐’는 손가락질 뒤로 매번 숨었다.

상처는 아물 틈이 없었다.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는 “지나고 보니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라, 다행이더라”고 했다. 불행이 숙명이 된 자의 체념이 담긴 말이었다. 살 이유를 잃은 유족들은 살기 위해 “아픔이 죄일 수 없다”며 서로 도닥였다. ‘지키지 못한 어른이어서 미안하다’던 목소리도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비죽이는 자들의 조소 앞에서 흐릿해졌다.

세월호 10주기를 한 달여 앞둔 지난 3일 전남 진도항 팽목방파제 난간에 ‘기억하고 행동하겠다’는 다짐이 새겨진 노란 깃발이 10년 세월에 바래고 올이 뜯겨나간 채 나부끼고 있다. 진도 | 서성일 선임기자


‘잊으라’는 주문은 되레 기억을 더 선명하게 했다. 피해자들은 그 10년을 버텼다. 살아남으려, 잊히지 않으려, 다시 같은 참사를 반복하지 않으려 할 수 있는 모든 싸움에 뛰어들었다. 싸움만은 아니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친구를 잃고 생존한 학생들은 더 아픈 이들을 찾아 달랬다. 골방에 스스로 갇히는 대신 광장에서 만나고, 나누고, 손 내밀었다.

스텔라데이지호와 공주사대부고, 이태원과 광주가 세월호를 매개로 이어졌다. 삼풍백화점과 씨랜드청소년수련원, 대구지하철과 가습기살균제, 인천 인현동 피해자들이 세월호 10주기를 앞두고 이름을 합쳤다. 이름하여 ‘재난참사피해자연대’다. “공동체가 지키지 못한 죽음을 되풀이하지 말자.” 남은 이들이 맺은 다짐이다.

영영 봄을 잃을 것 같았던 팽목에 올해도 어김없이 4월이 왔다. ‘그만 좀 하라’는 아우성을 뚫고 찾아온 10번째 봄이다. 먼저 떠난 이들에게 남은 이들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에 남은 생을 바치려는 이들에게 10년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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