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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애의 이달의 식재료
낙동강 하류 부산 대저동 생산
짭짤한 바닷물 만나 독특한 맛
식감도 단단해 볶음요리 제격
지난 20일 부산 강서구 강서체육공원에서 농협 관계자들이 대저 토마토 축제를 홍보하고 있다. 대저 토마토 축제는 3월23일부터 이틀간 열렸다. 연합뉴스

“당신은 설탕파? 아니면 소금파?”

토마토 이야기다. 어린 시절 엄마가 도톰하게 썰어낸 토마토에 흰 설탕을 솔솔 뿌리면 토마토 씨가 있는 촉촉한 곳 사이사이로 설탕이 녹아 달고 맛있는 국물이 만들어지곤 했다. 토마토를 다 집어먹고 넓적한 접시 위 국물을 한번에 마시려다 얼굴에 토마토 물을 뒤집어쓴 적도 있었다. 소박한 웃음거리가 있는 토마토에 대한 소중한 기억.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초록 토마토를 먹기 시작했다. 토마토가 초록이면 덜 익은 건데 이건 뭐지? ‘짭짤이토마토’란다. 초록일 때가 더 맛있다고 안 익은 풋토마토를 빨리 사가라고 부추긴다. 난 토마토에 설탕 뿌려먹는 이른바 ‘설탕파’인데 짭짤한 토마토라니? 이미 소금이 뿌려져 있으니 얼른 들여가라는 슈퍼 사장님 말에 속는 셈치고 사버렸다. 와! 이름부터 왠지 간이 딱 맞을 것 같은 짭짤이토마토에 설탕까지 뿌려 먹으니 이건 뭐 맛이 없지 않을 수가 없다. 그야말로 단짠의 조화가 기가 막히다!

짭짤이토마토는 별명 같은 거다. 맛이 그렇다는 걸 표현한 이름. 정식 명칭은 ‘대저 토마토’.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에서 나오는 토마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1978년 부산시로 편입되기 전까지 대저동은 김해군에 있었다. 낙동강 하류에 있는 이 땅은 부산에서 차를 타고 김해공항으로 넘어갈 때 늘 지나가는 그 길에서 훤히 보인다. 다리를 건너면서 항상 나는 “여기가 대저동이잖아. 지금 건너는 다리 아래가 낙동강 하류 쪽이고. 여기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서 땅이 기름지고 좋기 때문에 여기서 나오는 토마토를 대저동 이름을 붙여 대저 토마토라고 불러”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다리 위에서 본 대저동은 드넓게 펼쳐진 광야 같은 널찍한 땅에 물과 햇빛이 충만한 동네다. 수분과 일조량이 맛있는 토마토를 만든다. 게다가 바닷물이 섞여 있어 토마토에 미리 간을 더해준다니! 2012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지리적 표시제로 등록(86호)되면서 이곳에서 생산된 토마토에만 ‘대저 토마토’란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짭짤한 맛을 가진 토마토의 90% 정도가 대저동에서 생산된다. 대저동에서 생산된 것만 대저 토마토이고 나머지 지역에서 생산된 10%는 ‘짭짤이토마토’로 불린다.

이 매력적인 짠맛은 토마토가 완숙으로 익으면서 서서히 사라진다. 자체적으로 단맛이 형성되면 짠맛이 줄어들고 특유의 캐릭터가 약해지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다소 과육이 단단할 때 토마토를 씹으면서 짠맛을 느끼면 그게 더 조화롭다. 단단한 과육을 씹어 으깰 때마다 짠맛과 촉촉한 수분을 타고 느껴지는 토마토 특유의 단맛이 동시에 올라온다. 이쯤 되면 토마토에 소금을 뿌려 먹으면 훨씬 더 맛있다는 어르신들 말씀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간이 맞아야 단맛도 더 살아나는 법이다. 설탕파와 소금파의 합리적 통일을 대저에서 이뤄낸다.

대저 토마토는 이렇게 생으로 그냥 먹는 게 제일 좋다. 하지만 지용성 영양 성분이 많은 토마토이기에 요리에 활용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다소 단단한 식감을 가지고 있기에 볶음요리의 재료로 사용하면 적당하다. 뜨거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대파 썬 걸 살살 볶다가 토마토를 넣어 한두번 뒤집고 바로 달걀물을 넣어준다. 달걀이 익기 시작하면 불울 끄고 살살 저어 부드럽게 익힌 후 소금 후추로 간을 하면 이게 바로 ‘토마토 달걀 볶음’이다. 간이 딱 맞는데다 부드러우면서 씹는 맛도 있는 토마토와 달걀이 입안에서 춤을 춘다. 애주가라면 이 간단한 볶음요리 한접시에 소주 두병도 거뜬하다.

대저 토마토로 매일 먹는 밑반찬도 쉽게 만든다. 냄비에 식초, 화이트와인, 설탕, 물을 동량으로 붓고 통후추와 월계수잎 몇장을 넣어 팔팔 끓인다. 이 물에 대저 토마토를 통으로 담그고 잠시 식힌 뒤 냉장고에 하루 뒀다 꺼내먹으면 진짜 맛있는 토마토 피클이 된다. 따로 소금을 넣지 않아도 간이 딱 맞는 기적의 맛이다. 고춧가루, 다진 마늘, 다진 생강에 까나리액젓을 넣고 토마토에 버무려 ‘대저 토마토 김치’를 만들어도 맛있다. 과육이 단단할 때 토마토 김치를 만들어 냉장고에 두고 먹으면 1~2주간 생생한 김치맛을 볼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특하다. 어찌하여 달고 짠 상반된 두가지의 모습에서 맛의 조화를 이뤄낸 걸까? 단맛과 짠맛은 섞이면 조화롭다. 사람이 잘 따르지 못하는 자연의 섭리를 대저 토마토는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요리연구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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