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 집단이탈과 의대교수 사직서 제출로 의료공백이 불가피해진 가운데 27일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사직서를 냈지만, 병원을 어떻게 나가겠어요. 지금 교수들이 병원을 떠날 수 있는 상황은 죽어서 나가거나 병원이 망해서 나가는 것, 둘 중 하나밖에 없어요.”

지난 27일 한 지방 국립대병원 혈액종양내과 A교수는 2주째 낫지 않는 감기 탓에 잔뜩 잠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6주째. 의대 교수단체도 지난 25일부터 집단 사직서 제출에 나섰고, 근무 축소(주 52시간) 방침을 선언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수들이 A교수처럼 사직서를 제출하고도 여전히 의료현장을 지키며 전공의 몫의 일까지 떠맡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직서는 ‘사태를 빨리 해결해달라’는 의도로 낸 것일 뿐, 어떻게 환자를 두고 떠나겠냐”고 입을 모은다. 다만 장기화되는 격무로 쌓여가는 피로, 평소라면 치료가 가능했을 환자를 살리지 못하는 좌절감 등을 호소하며 “이대로 더 버티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주 2회 당직 서는 교수들 “힘들어도 환자 두고 못 떠나”
28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뉴시스

특히 중증·응급환자를 보는 대형병원 필수과 교수들은 살인적 업무강도를 호소한다. 경증·비응급 환자 진료는 최대한 1·2차 병원으로 분산하더라도, 생명과 직결된 고난도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까지 외면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3~4일에 한 번꼴로 당직을 서면서 입원환자도 사태 이전과 비슷하게 보고 있다는 A교수는 “솔직히 병원에서 사직서를 받아주면 감사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적·신체적으로 힘들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어린 백혈병 환자 보호자들이 내가 떠날까 봐 걱정됐는지 나를 ‘친절 직원’으로 추천하는 글을 올렸더라”며 “이런 환자들이 눈에 밟혀서 언젠가 정말 그만두더라도 이분들까지는 살리고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B교수도 “젊은 암 환자가 복도에서 나를 붙잡고 ‘교수님, 안 나가실 거죠?’라고 묻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중증·응급 환자는 이전과 다름없이 발생하는데, 응급실만큼은 끝까지 문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든 환자들을 살리려 노력하고 있지만, 평소 4~6명이 지키던 응급실을 1~2명이 지키면서 정말 억지로 버티는 상황”이라며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말 힘들어서 그만두겠다는 동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 집단이탈과 의대교수 사직서 제출로 의료공백이 불가피해진 가운데 27일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병상을 밀며 이동하고 있다. 뉴스1



“환자 잘못될까 겁나” “전공의 설득 명분 만들어주길”
병원에 남은 교수들이 소진될수록 의료사고 같은 환자 피해가 커질 거란 불안감도 크다. A교수는 “예전에는 한 환자를 두고 우리 과 전공의·전임의부터 진단검사과·병리과 등이 한 팀으로 뭉쳐 치료법을 의논했다면, 지금은 나 혼자 모든 판단을 내려야 한다”며 “내가 무언가 하나 까딱 놓쳐서 환자가 잘못될까 봐 너무 겁이 난다”고 토로했다.

서울 내 상급종합병원 혈액종양내과 C교수도 “전공의들이 있던 때도 당직 다음 날 바로 근무하면 사고 위험이 있다고들 했는데, 지금은 이들이 하던 일을 더 나이 든 사람들이, 더 강도 높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의료사고는 언젠가 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안 나고 있는 게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급성 백혈병 환자는 전국에서 2~3명꼴로 매일 생긴다”며 “다른 암 발생은 더 흔한 점을 생각하면, 이들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상당 부분 막혀 있는 현 상황은 이미 파국이 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누구보다 빠른 사태 해결을 바라는 이들 교수들은 ‘2000명’ 증원을 두고 대치하는 정부와 전공의들 양쪽에 아쉬움을 표했다. A교수는 “나도 증원에는 찬성하지만, 2000명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다. 정부가 먼저 증원 규모를 풀어야 교수들도 전공의 복귀를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며 “정부 태도가 변한 뒤에도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때는 혼내기도 하고, 여론의 따끔한 질타도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는 상황 아니냐”고 말했다.

C교수는 “2020년 파업 때처럼 중환자실·응급실은 지켜야 했는데, 모두 나간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며 “정부가 증원 규모를 재검토해야 전공의들이 돌아올 거란 기대가 조금이나마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542 7시간 마라톤 회의에도…결론 못낸 최저임금 업종 구분 랭크뉴스 2024.06.27
3541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법정 심의기한까지 결론 못내 랭크뉴스 2024.06.27
3540 "멋있을 듯"vs"세금낭비" 광화문 100m 태극기 조형물 "어떻게 생각하세요?" 랭크뉴스 2024.06.27
3539 임산부 아니면 '삐'…"배려석에 '센서' 붙이자" 제안에 서울시 답변은? 랭크뉴스 2024.06.27
3538 "팬서비스 미쳤다"…LG트윈스 명물 '오리갑' 10년만에 깜짝 등장 랭크뉴스 2024.06.27
3537 ‘아동 학대’로 체포된 보육교사…얼굴 공개되자 난리났다, 대체 왜? 랭크뉴스 2024.06.27
3536 ‘네웹’의 나스닥 데뷔, 몸값 단숨에 ‘4조원’ 랭크뉴스 2024.06.27
3535 내년 '최저임금 구분 적용' 마라톤 논의에도 결론 못내 랭크뉴스 2024.06.27
3534 러시아 “비우호국과 외교관계 격하 포함 모든 조치 고려” 랭크뉴스 2024.06.27
3533 '최저임금 업종 차등' 7시간 마라톤 회의 끝 "추가 논의하자" 결론 없이 종료 랭크뉴스 2024.06.27
3532 '럭셔리 테크'로 향하는 젠테…다음 목표는 '글로벌' 랭크뉴스 2024.06.27
3531 국가안보실 컨트롤타워였나‥계속해 드러나는 거짓말 정황 랭크뉴스 2024.06.27
3530 "사망 확률 4% 더 높다"…'현대인 필수품' 종합비타민 충격 결과 랭크뉴스 2024.06.27
3529 미국 1분기 GDP 전분기 대비 1.4% 증가... 7분기 만에 증가율 최저 랭크뉴스 2024.06.27
3528 최저임금 1만원 임박?...관건은 업종별 차등 적용 랭크뉴스 2024.06.27
3527 아리셀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나라 지키다 죽었나”…관할 파출소장 ‘막말’ 랭크뉴스 2024.06.27
3526 러 "동맹과 군사·군사기술 협력 지리 넓어져" 랭크뉴스 2024.06.27
3525 네이버 이해진, 젠슨 황 만났다…"소버린 AI 협력 논의" 랭크뉴스 2024.06.27
3524 러시아 "비우호국과 '외교 관계 격하' 포함 모든 방안 고려" 랭크뉴스 2024.06.28
3523 정부 유보통합 로드맵…‘교사 자격 통합’ 가장 큰 불씨 남았다 랭크뉴스 2024.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