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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여왕’ 6회 시청률 14.1%
“성 역할 비트는 쾌감…인기 비결”
특정 상황서 주체성 잃는 한계도
박지은 작가 작품 속 여성캐릭터는 가부장제에서 비롯한 사회적 관습에 균열을 일으키며 남성 캐릭터를 주도해왔다. 사진은 ‘눈물의 여왕’. 티브이엔 제공

한 사위는 하버드에서 화학을 전공한 능력을 십분 발휘해 동그랑땡의 익는 순간을 포착해 절묘한 순간에 뒤집는다. 잘 익은 동그랑땡을 접시에 흔들림 없이 쌓는 건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나온 또 다른 사위의 몫이다. 사위들은 “홍씨 집안 제사는 홍씨 손으로 차릴 것이지”라며 눈물을 훔치면서도 제사상 일은 거부하지 못한다.

지난 9일 시작한 드라마 ‘눈물의 여왕’(tvN 토일 밤 9시20분)은 ‘재벌 여성과 평범한 남성의 결혼’이라는 진부한 설정을 이 장면으로 비틀며 차별화를 꾀한다. 유통 재벌 퀸즈그룹에서 옛 왕가나 뼈대 있는 집안의 전통을 따른다며 1년에 15번 지내는 제사를 남자 손으로만 준비하는 모습과 처남은 부엌 일에서 쏙 빠지는 장면은 성별만 바뀌었을 뿐 현실 속 여성의 설움을 유쾌하게 담아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1회부터 성 역할을 바꾸고 남성판 신데렐라 판타지를 혹독한 처월드 현실로 뒤집어 놓으며 색다른 기대감을 들게 했다”고 짚었다.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웃음을 유발하는 설정은 이 드라마의 초반 인기를 견인했다. 1회 시청률 5.9%(닐슨코리아)로 시작해 4회 만에 두자릿수를 넘었고, 최신 회차인 6회는 14.1%로 상승세가 가파르다. 이 드라마를 집필한 박지은 작가의 전작 ‘사랑의 불시착’(8회 첫 두자릿수)보다 빠르다.

여성주도적 남녀관계, 주인공들을 방해하는 세력의 등장, 능동적인 여성이 불가항력 상황에 처해 변화하는 서사까지. 박 작가는 ‘내조의 여왕’(2009)부터 ‘사랑의 불시착’(2019)까지 모든 이야기를 고정된 틀 안에서 펼쳐왔다. 이 때문에 상투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이 대체로 성공한 것은 구태의연함 안에서 사회적 통념을 깨는 시도를 해 와서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에서 차윤희(김남주)의 시월드 입성기를 다루면서도 고부협정 같은 타협점을 찾고 직장 동료들에게 육아 품앗이를 제안하는 식이다.

‘눈물의 여왕’은 성 역할을 바꾸고 신데렐라 판타지를 혹독한 처월드 현실로 비틀며 초반 상승세를 타고 있다. 티브이엔 제공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박 작가 작품은 연애와 결혼을 중심축으로 가족관계나 가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익숙한 소재를 가져오되, 발상의 전환으로 경쾌함을 준다”고 분석했다.

‘눈물의 여왕’에서는 남녀관계에서도 유교적 가부장제를 헤집으며 한발 더 나아간다.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오피스텔을 전세로 얻을 정도로 목돈이 있고, 소가 30마리가 넘는” 백현우(김수현)는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같은 회사 인턴 홍해인(김지원)을 당연히 책임져야 할 상대로 여긴다. 일종의 보호자 모드가 작동했는데, 홍해인이 재벌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둘의 관계에서 보호자는 뒤바뀐다. “나만 보면 돼” “나 절대 당신 눈에서 눈물 나게 안해”라며 재벌가 입성을 고민하는 백현우를 찾아가 안심시키는 건 여성인 홍해인이다. ‘내조의 여왕’ 천지혜(김남주)는 회사에서 못 나가는 남편을 멱살 끌고 일으켜 세우는 등 박 작가는 작품마다 주체적인 여성을 내세워 능동적인 역할을 부여해왔다. 정 평론가는 “홍해인을 비롯한 박 작가 작품의 여성 캐릭터는 가부장제에서 비롯한 사회적 관습에 균열을 일으키며 남성 캐릭터를 주도해온 게 장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독립적이던 여성 캐릭터가 특정 상황에 놓이게 된 이후 주체성을 잃게 되는 전작들의 단점은 ‘눈물의 여왕’에서도 드러난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당당하던 윤세리(손예진)는 북한이란 공간에서 리정혁(현빈) 보호 아래 지내면서 “샴푸와 아로마 향초”를 찾는 등 현실 파악 못하는 민폐캐릭터가 되기도 했다. ‘눈물의 여왕’에서는 홍해인을 시한부 상황에 내던지면서 백현우한테 기댈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자주 정신을 잃게 되며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때마다 백현우가 나타나 구해준다. ‘별에서 온 그대’(2013) 안하무인 천송이(전지현)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도민준(김수현)의 도움을 받고, ‘공감능력 제로’인 홍해인이 아프고 난 뒤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는 등 박 작가 작품 속 여성들은 어려움에 처해 남성의 도움을 받은 뒤에야 진짜 성장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윤 교수는 “‘로맨스를 강화하기 위한 장애물’이라는 장르 문법을 따르는 것 같다”며 “운명적 시련 또는 고난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의 주체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로맨스를 강화하는 장르 문법을 따르는 것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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