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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모험가인 루스 하크니스는 1936년 새끼 판다를 데리고 미국에 돌아와 유명해졌다. 최초의 판다 열풍이 불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남종영 | 환경논픽션 작가

에버랜드의 자이언트판다 ‘푸바오’가 다음달 3일 중국 쓰촨성 판다보호연구센터로 보내진다. 전국민적 사랑을 받은 푸바오가 떠날 때가 되자, 언론은 일거수일투족 기사를 쏟아낸다. 삼성전자가 푸바오와 동행할 사육사에게 중국어 실시간 통역이 가능한 갤럭시24를 제공했다든지, 에버랜드가 여행사와 제휴해 푸바오를 보러 가는 여행 상품을 준비 중이라든지.

푸바오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나도 스마트폰을 켜고 넋 잃고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건 판다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판다 열풍 최초의 사례는 1936년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루스 하크니스가 생후 9주 된 야생 판다를 포획해 데려왔을 때다. 하크니스는 판다를 안고 젖병을 물렸고(판다 인형의 모델이 여기에서 나왔다), 멸종위기종 판다는 생명체의 취약성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떠올랐다.

판다는 20세기 중반 이후 국제 정치의 한가운데 섰다. 마오쩌둥 주석이 북한과 옛소련에 판다를 선물하면서 판다 외교가 시작됐다. 바로 미-소 냉전이 이어져 서구권 동물원에서는 판다를 볼 수 없었다. 1958년 시카고동물학회가 어렵사리 판다 ‘치치’를 데려오기로 한 것을 미국 국무부가 ‘공산주의 상품’이라는 이유로 불허한 역사도 있다. (결국 치치는 런던동물원에서 최고 인기를 누렸고, 환경단체 ‘세계자연기금’의 마스코트가 됐다)

1957년 중국 쓰촨에서 포획된 자이언트판다 ‘치치’는 1958년부터 영국 런던동물원에서 사육됐다. 미소 냉전으로 판다 도입이 쉽지 않았던 서구 사회에서 최고 스타 판다로 떠올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냉전을 무너뜨린 정치 현장에도 판다가 있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뒤, 미국에 온 ‘링링’과 ‘싱싱’은 국민 판다로 떠올랐다. 그 뒤 중국은 정상 외교의 기념품으로 판다를 활용했고, 세계 각국의 동물원도 판다를 들여왔다. 판다 모셔오기 경쟁이 과열되자, 중국은 한 해 100만달러가량에 판다를 빌려주는 ‘연구용 대여’라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있는 푸바오와 엄마, 아빠인 아이바오, 러바오도 중국 소유다.

판다를 선물로 주려면, 개체수가 많아야 한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즈’는 2017년 ‘판다 외교’라는 탐사보도에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150마리 남짓이던 사육 판다가 적극적인 번식 정책을 통해 급증했다고 밝혔다.

소강상태에 있던 판다 외교도 2012년 시진핑 주석 취임 뒤 활발해졌다. 보도에는 웃지 못할 얘기도 나온다. 국제자연보전연맹이 판다의 멸종위기 등급을 ‘위험’에서 ‘취약’으로 낮추려고 하자, 중국 당국이 오히려 이를 뒤집으려고 맹렬히 로비했다는 것이다. 판다 외교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동물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에 크게 반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동물은 인간의 영향력 아래 있고 정치적 행위로 동물의 처우가 좋아지면 나쁠 게 없다. 대통령의 유기견 입양이 문화를 바꾸는 데 기여하듯 말이다.

문제는 바람직한 효과가 없을 때다. 안타깝게도 중국 정부는 감금 사육하는 판다 수를 서너 배 늘리는 동안 야생 판다 보전에는 공을 들이진 않았다. 숲 면적은 줄었고, 그나마 있는 서식지도 도로 건설로 파편화됐다. 그 결과 사육 판다(633마리, 2020년)가 야생 판다(1864마리, 2015년)의 3분의 1에 이를 정도로 많아졌다. 야생 방사한 개체수는 11마리에 불과하다. 판다보호연구센터가 ‘판다 공장’이라는 냉소를 받는 이유다.

푸바오 현상을 보며 가장 불편한 지점은 판다가 사람을 좋아할 거라는 인간중심적 관점이었다. ‘푸바오는 사회성이 좋아 사육사를 잘 따른다’ ‘엄마 아빠와 함께 있고 싶은데, 중국으로 보내다니 너무 슬프다’ 등등.

과연 그럴까. 야생에서 판다는 숲의 단독자에 가깝다. 네 살이 되면 어미를 떠나고, 사회적 만남은 짧은 번식기에만 이뤄진다. 이런 판다의 생태를 봤을 때, 판다가 사람을 좋아한다거나 가족을 떠나기 싫어한다는 얘기는 그저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다.

푸바오에 대한 사랑을 탓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한 세기 동안 이어진 판다 열풍에 휘말려 우리가 이런 시스템의 협력자가 된 건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는 얘기다. 영국의 환경운동가 크리스 패컴은 2009년, 정작 야생 보전에 써야 할 돈을 사육 판다 개체수 늘리기에 썼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판다 보전은 지난 50년간 환경 보전에 쓴 비용 중 가장 큰 낭비다. 돈을 제대로 쓸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최후의 판다를 잡아먹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논란을 부를 말이긴 하지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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