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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최씨의 명함. 유족 제공


신입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또 일어났다. 지난 1월 임용돼 출근한 지 두달 남짓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유족은 직장 상사의 강한 업무 압박과 폭언이 고인을 사지로 내몬 것으로 보인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 달 새 전국에서 2년 차 미만 9급 공무원이 5명이 자살했다.

26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충북 괴산군청 9급 공무원 최모씨(38)가 지난 4일 혼자 살던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1월 2일 괴산군청에 처음 출근한 지 63일째 되던 날이었다.

유족은 유서 없이 숨진 최씨의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최씨 휴대전화에 녹음된 통화 내용과 회의 녹음 파일 등을 발견했다. 최씨는 친구에게 직장 생활에서 겪은 어려움을 토로했고, 이 대화 내용은 자동녹음 기능으로 녹음돼 있었다.

최씨는 임용 첫날 출근했더니 책상과 컴퓨터가 준비돼 있지 않았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며칠 뒤 컴퓨터가 준비되자 상사는 ‘그동안 뭐 했느냐?’면서 업무 미숙을 질타했다. 최씨는 휴일과 명절에도 추가 근무를 하느라 별도의 교육을 받을 여유가 없었다.

수만 쪽에 달하는 법령을 읽지 않았다거나 업무 파악이 덜 됐다며 혼나는 일도 잦았다. 그는 친구에게 “어쩌다 한 번 혼나는 게 아니고 거의 맨날 30분에서 1시간 혼난다”고 했다. 상사의 꾸지람은 대부분 주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졌다.

유족은 최씨가 출근하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인터넷에서 ‘자살’ 또는 ‘공무원 시보 일 못 하면’ ‘공무원 면직’ 등을 검색했다고 전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공무원이 됐는데 업무 능력이 미숙하다며 계속 혼이 나자 ‘혹시 잘리는 것 아닌지’ 걱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유족들은 말했다.

상사가 너무 혼을 내자 주변에서 “한 달도 안 된 애한테 너무 뭐라고 하는 거 아니냐?”고 말렸다는 일화도 친구와의 통화 내용에 있었다. 이때 상사는 “한 달씩이나 됐다”고 답했다고 한다. 최씨는 “군수가 옆에 있을 때 (상사가) 뭐라고 하니 참모진이 와서 주의를 줬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가족은 힘들어하는 최씨에게 회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면 녹음을 해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씨가 녹음한 지난 2월 16일자 회의 뒷부분에는 상사가 ‘누구에게 업무 내용을 물어봤냐?’는 취지로 물어보자, 최씨는 전임자에게 물어봤는데 전임자가 잘 모른다고 답했다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말은 들은 상사는 대뜸 “그 ×××가 그렇게 얘기했어? 지 일인데 잘 모른다고?”라고 욕설을 섞어 말했다.

최씨는 지난달 24일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병원 기록에는 그가 5~6주 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지난 4일 최씨가 출근하지 않아 군청에서 가족에게 연락했다. 부모님이 그가 사는 집을 찾아갔을 땐 이미 숨진 뒤였다.

괴산군청 홍보팀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신문고에 유족의 신고가 올라와 조사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민원이 취하돼 조사를 멈췄다”면서 “유족이 감사원에 신고해 감사원이 군청에 자료 요구를 해온 상태”라고 했다.

최씨의 직속 상사는 폭언했다는 의혹에 대해 “업무지시를 한 것이고 욕을 하거나 폭언을 하지 않았다. 모르는 이야기다”라고 했다. 담당 과장은 “조사가 진행 중이라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유족은 최씨가 임용 수개월 전 1~2주가량의 짧은 연수를 받은 외에는 담당 업무 관련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씨 업무는 사업 허가 신청에 대해 관련 법을 검토하고 회신하는 것이었다. 그는 업무에 배치된 지 일주일 만에 이런 업무를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씨 전임자는 그와 통화하면서 “신입이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3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공무원은 최씨를 포함해 4명이다. 지난 5일에는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김포시 9급 공무원이 사망했다. 20일에는 남양주시 신입 공무원이 업무 과부하를 호소하며 임용 3개월 차에 사망했다. 21일에는 임용된 지 2년 미만인 여수시 공무원이 개인적인 문제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26일 양산시 공무원이 사망한 사건까지 더하면 한 달 사이에 9급 공무원 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중배 전국공무원노조 대변인은 기자와 통화하며 “입사 5년 미만에 퇴직하는 공무원이 1만3000여명인데 대부분 7~8급 공무원”이라며 “이들의 공백을 갓 임용된 9급 신규 공무원이 메우게 되는 상황”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인력이 부족해 신규 공무원이 임용돼도 교육 없이 바로 투입되는 일이 많다”고 했다. 험이 어느 정도 쌓인 공무원이 맡아야 할 업무를 제대로 된 사전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못한 신입 공무원들이 맡으면서 이들이 느끼는 업무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이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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