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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25일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만난 김모씨(69)는 남편 황모씨(69)의 수술 날짜가 앞당겨졌지만 기쁨보다 분노가 더 컸다. 강원 원주시에 사는 황씨는 대장암 수술을 한 뒤 회복하던 와중에 넘어져 고관절이 골절됐다. 수술은 다음 달 3일로 잡혔다가 “의료진이 없어서 수술을 못 한다”며 무기한 연기됐다. 김씨가 ‘검사한 자기공명영상(MRI) 사진이라도 보자’고 요청해 25일 예정에 없던 추가 진료를 겨우 잡았다.

그런데 이날 진료 도중 골절부에 괴사가 진행된 게 발견됐다. 다음 달 1일로 수술이 긴급히 잡혔다. 김씨는 “오늘 예약을 못 잡았으면 수술을 언제 할 수 있었을지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이런 일까지 겪으니 이제 사직서를 낸 의사들은 ‘평생 의사를 못 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든다”며 울분을 토했다.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의 ‘무더기 사직서 제출’이 25일 현실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4일 “집단 사직한 전공의의 면허 정지를 유연하게 처리하고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그런데도 의대 교수들은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며 사직서 제출을 강행했다. 이날 교수들이 집단 사직한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은 사직서를 낸 교수들을 향해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해달라” “환자만 생각해 대화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해 정부와 의사단체 간 대치가 심화되는 가운데 지난 24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보호자와 함께 오가고 있다. 정부는 이번 주부터 업무개시명령에도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면허 정지 처분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전국 의대 교수들은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조태형 기자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25일 한 교수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자들은 교수들까지 집단 사직에 나선 데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췌장암 3기로 항암 치료를 받는 박광숙씨(65)는 “교수들은 진짜 사직을 안 할 줄 알았는데 충격적”이라며 “담당 교수님도 사직한다고 하면 ‘의사 선생님’이라는 말이 안 나올 것 같다. 진짜 지도자급 교수도 (사직)하는 거냐”라고 되물었다. 임신 초기라 2주 단위로 검진을 받는 조모씨(37)는 “환자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교수 사직) 통보를 받으니 병원이나 의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두려움이 앞선다”고 말했다.

사직서를 낸 교수들은 그동안 전공의 대신 진료·야간당직 등을 해오던 것을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으로 줄여 일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2000명 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지 않으면 오는 1일부터는 외래 진료도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중증 질환이 의심돼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불안감도 증폭되는 모양새다. 유방 질환이 의심돼 초음파 검사를 받은 뒤 병원을 찾은 김유미씨(47)는 “검사 결과가 안 좋아서 수술을 바로 해야 하는 상황이면 나는 어떡하냐. 대치에 끝이 보이는 것도, 문제 해결책도 안 보여서 굉장히 불안하다”고 말했다. 전립선 비대증을 20년째 앓고, 암 발병이 의심돼 오는 26일 MRI 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김원이씨(70)도 “이대 병원에 있다가 상태가 나빠서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는데, 담당 교수도 사직하면 절망감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교수마저 병원을 떠난다면 환자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라며 “정말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어 나가는 상황이 돼서야 비상식적인 사태의 종지부를 찍을 셈인가”라고 비판했다.

불안한 마음이 크지만 환자들은 의사와 정부가 모두 대화와 타협에 나서길 바랐다. 림프종 수술 후 3개월 주기로 병원을 찾아 추적 검사를 받는 이갑수씨(64)는 “정부가 ‘무조건 2000명 증원을 하겠다’는 식으로 소통하면 결국 나처럼 위급한 환자들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며 “조금씩 양보해서 우선 1000명이라도 증원하고 점차 늘리자는 식으로 협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췌장암 3기로 항암 치료를 받는 임모씨(70)는 “수술을 안 하면 생명이 달린 입장에서는 화가 나지만 잘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며 “결국에는 (의정) 대화로 풀릴 것 같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email protected], 강은 기자 [email protected]>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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