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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 #모스크바 테러
24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크로코스 시티홀’ 공연장 밖에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 크라스노고르스크/로이터 연합뉴스

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지난 22일(현지시각) 금요일 저녁 모스크바주 외곽 크라스노고르스크의 공연장 ‘크로커스 시티홀’에서 록그룹 ‘피크닉’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6200여명을 대상으로 잔혹한 테러가 발생해 최소 133명이 숨지고 150여명이 다쳤다고 러시아 타스 통신이 24일 보도했다. 러시아 조사위원회는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 떨어진 국경 지역 브랸스크에서 핵심 용의자 4명을 검거하는 등 용의자 11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

사건 직후 이슬람국가-호라산은 텔레그램을 통해 “(우리가) 모스크바 외곽에서 열린 대형 모임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2015년 시리아 내전 개입 등으로 이슬람국가의 주요 공격 대상국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테러 발생 19시간 만인 23일 오후 대국민 연설에서 이슬람국가는 언급하지 않은 채, “그들은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도주했는데, 초기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쪽에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며 ‘우크라이나 배후설’을 전면에 꺼냈다. (3월24일, 한겨레)

24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크로코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구급대원들이 테러 현장의 잔해를 치우고 있다. 크라노스고르스크/타스 연합뉴스

Q. 헐~ 이슬람국가(IS)! 10년 전 듣던 무시무시한 그 이름이 다시 등장하다니…. 사라진 줄 알았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난 거야?

A. 이슬람국가가 뉴스를 휩쓸던 시기는 2014년 6월 이라크 북서부-시리아 동부까지 광활한 지역을 점령할 때였어. 이들은 이듬해인 2015년엔 이라크 및 시리아 일대를 차지해 1200만명의 인구에 3만명 이상의 무장대원을 갖춘 준국가 세력으로까지 부상했지. 이름 그대로, 무함마드의 후계자인 칼리프가 통치하던 이슬람 제국의 복원을 내걸고, 전세계 무슬림들의 조국인 ‘이슬람국가’를 선포했어.

그러나 2017년 들어 미국이 주도하는 반이슬람국가 연합군에 의해 밀려나더니 2019년 3월엔 급격히 세력이 쪼그라들었어. 초대 ‘칼리프’였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도 2019년 10월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에서 두 자녀와 함께 자폭했어.

하지만 이슬람국가가 완전히 박멸된 것은 아니었어. 이슬람국가 전성기에 전세계 무슬림 지역에선 지부가 결성돼 있었거든. 흩어져 본국으로 돌아간 이슬람국가 대원들은 각 지부를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해나갔어.

이번에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를 벌인 ‘이슬람국가-호라산’은 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활동하던 세력이야. 호라산은 이란·투르크메니스탄·아프가니스탄 일대를 지칭하는 옛 지명이야. 불안한 정세 속에서 호라산이 이슬람국가 최대 잔존 세력으로 부상한 거지.

러시아 크로코스 시티홀 공연장 테러 사건을 일으킨 혐의로 체포된 남성이 24일 법원에에 소환돼 앉아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Q. 호라산은 어떻게 최대 세력이 됐어?

A. 아프가니스탄은 전세계 이슬람 무장세력의 본향이야. 9·11 미국 테러를 저지른 극단주의 세력인 알카에다가 아프간에서 태어났다고. 잘 알다시피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잖아. 소련에 맞서 이슬람 무장세력이 결성되자 냉전 시절 소련과 경쟁하던 미국은 무기를 대주며 이슬람 세력을 지원했고, 결국 이들의 주요 세력이었던 탈레반이 소련을 물리치고 집권해.

잘 알다시피 탈레반은 9·11 테러 주범인 알카에다를 지원했다가 미국에 두들겨 맞지. 하지만 탈레반은 사라진 게 아니었어. 탈레반과의 소모전에 지친 미국은 2021년 아프간에서 군대를 완전철수했거든.

한편, 이슬람국가 세력 전성기에 아프간 일대에서 결성된 호라산은 미국-탈레반 전쟁 틈새에서 탈레반과 경쟁하며 세력을 키워나갔어. 호라산은 탈레반과 종족도 달라. 호라산은 아프간 소수민족인 타지크·우즈벡족이고, 탈레반은 다수파인 파슈툰족 중심이야.

2021년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 때 카불공항에서 테러가 발생해 미군 13명이 사망했던 사건 기억나? 탈레반과 타협하고 아프간을 떠나려던 미군에게 테러를 저지른 게 호라산이었어.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국가-호라산은 지난 1월 이란 전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지낸 카셈 솔레이마니 추도식에서도 테러를 일으켰다. 이란 시민들이 1월5일 테헤란 남서부 케르만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케르만/AP 연합뉴스

Q. 호라산은 미국과 싸웠던 거잖아. 근데 이번에 왜 뜬금없이 러시아를 공격한 거야?

A. 이슬람 무장세력의 특징은 미국이나 소련 같은 거대 세력이 힘이 약해지는 권력공백 때 발호하는 거야.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골몰해 옛 소련 무슬림 지역에 감시가 소홀해지자 다시 뭉치기 시작했어.

수니파가 주도하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 입장에서 보면 미국 등 서방뿐 아니라 러시아나 중국, 시아파 국가인 이란 모두가 적이야. 특히 이들은 무신론인 사회주의를 극도로 혐오해서 소련과 극렬 투쟁을 벌였고,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무슬림 지역인 체첸 분리독립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자 깊은 원한을 품게 됐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목이 잡히자 이슬람 무장투쟁 세력으로선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 거야. 서방과 사이가 대립하는 러시아와 이란 등을 주요 타격 대상으로 설정하고 힘을 키워나갔어.

그러고보니 호라산은 정말 안 끼는 데가 없네. 올해 1월 카셈 솔레이마니 전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추모식 때 벌어진 테러 기억나? 이건 비서방국가를 위협하는 호라산의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어. 처음에 이란은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다가 이슬람국가가 자인하고 나서자 머쓱해졌지. 이란으로선 정말 분통 터지는 일이었지.

공연장에서 테러가 발생한 이튿날인 23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레믈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모스크바/AFP 연합뉴스

Q. 아무리 호라산 세력이 커졌다고 하더라도 푸틴이 철권통치하는 러시아까지 건드린 건 너무 나간 거 아니야?

A. 앞서 말했듯,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은 서방/비서방 국가를 안 가려. 특히 푸틴은 철전지 원수야. 푸틴은 1999년 12월31일 러시아 대통령 권한대행에 임명된 첫날 체첸으로 날아가서 체첸전쟁의 완전한 승리를 다짐했고, 이후 군사력을 동원해 체첸을 밀어붙였어.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사건, 2004년 북오세티아 학교 인질극 사건 때도 푸틴은 눈깜짝 않고 체첸반군을 진압해. 이후 러시아에서의 이슬람 테러 공격은 잦아들었고.

Q. 모스크바 테러 사건이 터지자 미국은 테러 위협을 사전에 경고했다고 밝혔잖아. 미국은 정말 알고 있었던 걸까? 그럼 왜 푸틴은 이를 무시한 거지?

A.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이 지난 7일 러시아에 머물고 있는 미국 시민들에게 향후 48시간 동안 콘서트 같은 대형 집회에 가지 말라는 경보를 발령했다고 해. 미국은 이 테러 정보를 러시아에 미리 알려줬다고 주장하고 있어. 미국 정보기관들은 테러 등 중대한 위협에 관한 정보는 적성국에게도 제공해야 한다는 ‘경고의 의무’ 원칙이 있다고 해.

물론, 미국이 얼마나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 사실 테러 경보 같은 건 정보기관들의 일상적 활동이거든. 하다못해 회사원들도 마찬가지잖아. 뭔가 찜찜한 일이 생기면, 만일에 대비해 ‘면피 차원’에서라도 일단 보고하고 본다고. 미국에 러시아에 미리 테러 위협을 알려주기도 했겠지만,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밝힌 것은 테러 방지에 실패한 푸틴을 엿먹이려는 의도도 깔려 있겠지.

러시아도 미국이 전달한 정보를 깡그리 무시한 것 같지는 않아. 다만 서방 국가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를 협박하려는 교란용이라고 받아들인 듯해. 러시아가 미국의 정보를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다가 테러를 막지 못한 것으로 추측이 되네.

Q. 근데 러시아는 정말 이번 테러에 우크라이나가 연관돼 있다고 보는 거야? 테러 책임론을 떠넘기려는 음모론 아니야?

A. 국경을 넘는 세력 다툼엔 상상할 수 없는 국가 간 공작정치가 작동한 경우도 실제로 있어. 그러나 푸틴이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얼마나 책임을 따져물을지는 지켜봐야해. 일단은 테러 예방이 실패했다는 책임론을 피하려고 우크라이나를 언급하는 것 같거든. 이란도 1월 테러 때 이스라엘이 배경이라고 주장하다가 호라산 소행으로 확인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잖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가 어디로 불똥이 튈지 지켜보자고.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극단주의 세력이 어떤 조건과 배경에서 시작했는가, 이 문제와는 별도로 민간인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행위엔 반드시 후과가 따른다는 거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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