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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교수 부족 ②시설 미비 ③부실 실습
정부·대학 "2년간 준비 가능" 온도 차
22일 오전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의과대학 내 강의실이 불이 꺼진 채 텅 비어 있다. 제주=김영헌 기자


“비행 교관도, 비행장도 없는데 파일럿만 수천 명 뽑는 꼴이죠. 훈련이 부실한 비행사가 모는 비행기를 승객이 안심하고 탈 수 있을까요?”

지난 22일 충북 청주시 충북대 의대 본관 앞에서 만난 의대교수 A씨가 반문했다. 그는 “카데바(해부용 시신)가 부족하면 해부는 어떻게 배우냐고 물었더니 정부 인사가 ‘인터넷이나 VR(가상현실)을 통해 배우면 된다’고 답했다더라”며 “의대 수련 과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한심한 탁상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배정에 따라 비수도권 의대 정원은 2,000명이나 늘어났다. 각 대학들은 일제히 환영하며 향후 교육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겠다고 공언하지만 의대 교수들의 반응은 다르다. 갑자기 늘어난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지역 거점 국립대 가운데 증원율이 4.1배(49→200명)로 가장 높은 충북대를 비롯해 두 배 안팎이 증원된 제주대(40→100명), 경북대(110→200명)를 찾아 현장 목소리를 들어봤다.

충북대와 제주대 모두 학기 초의 들뜬 분위기나 부산함은 전혀 없었다. 충북대는 대학병원과 의대를 오가는 의료진만 간혹 한두 명씩 눈에 띄었고, 두 차례나 개강을 연기했지만 1학년을 뺀 재학생의 90% 이상이 집단 휴학을 한 제주대도 강의실 대부분이 불이 꺼진 채 텅 비어 있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소속인 최중국(가운데) 충북의대 교수협의회장이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의대 증원 취소 집행정지 사건 심문 기일에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의대 교수들은 한결같이 정원 증원 이후 가장 먼저 맞닥뜨릴 문제로 교수진 확충을 꼽았다. 제주대 B교수는 “국립대병원 전임 교원을 1,000명 늘린다고 하는데, 교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쉽게 되겠느냐”고 황당해했다. 정원이 불어난 전국 30여 개 의대들이 서로 ‘교수 빼가기 경쟁’을 벌일 거란 우려도 나왔다. B교수는 “제일 쉬운 방법이 다른 의대 교수 데려오는 것 아니겠느냐”며 “처우와 근무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우리는 있는 교수도 뺏길 판”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해부학과 생리학, 기생충학 등 기초의학 분야는 당분간 교수 충원 자체가 불가능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경북대 C교수는 “전공자가 거의 없는 기초의학 교수는 지금도 천금을 줘도 뽑을 자원이 없다. 2년 내 이 분야 교수 충원은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충북대 D교수 역시 “기초학문 교수는 수도권 의대도 부족한데 지방대는 더욱 대안이 없는 실정”이라며 정부를 성토했다.

시설 확충에 대해서도 학교와 교수들 간 상당한 온도 차가 있었다. 충북대는 부족한 교육 공간은 지난해 말 오송에 준공한 의대 3호관(연면적 7,000㎡ 규모)을 활용하는 등 내년 입학생이 본과에 올라가기 전까지 2, 3년 동안 전력을 쏟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수들은 800병상을 갖추고 평상시 500~600명의 입원 환자를 운용하는 충북대병원은 현 정원(49명)이 수련생 실습과 진료에 가장 적합한 수준이며 증원을 해도 최대 10명 수준이 한계치라고 반박했다. 학교와 정부·지자체가 합심해 인프라 개선에 속도를 내더라도 타당성 조사와 부지 선정, 사업비 확보, 공사 기간을 감안할 때 상당 기간 불편과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게 대체적인 교육 현장 분위기였다.

교수들은 교수진 부족과 시설 미비는 필연적으로 부실한 임상 실습으로 이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경북대 C교수는 “해부 실습은 지금 보통 8명 내외가 참관하고 실습하는데 90명을 늘리면 수업할 교수도, 수업할 장소도 없다”며 “24명이 붙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해부 실습을 마친 뒤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혹독하게 거치며 부족한 실습을 메웠던 1980년대로 회귀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대 E교수는 “본과 3, 4학년이 되면 제주대병원에서 실습 교육을 받는데, 현재 최대 80명 정도 된다”며 “증원 후엔 실습생이 200명까지 늘어날 텐데 우리 여건에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규모”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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