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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지난해 그만두고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A(25)씨는 '의원면직 브이로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사진 A씨 유튜브 채널 캡쳐

충북의 한 군청에서 9급 공무원이었던 A씨(25)는 지난해 10월 공무원증을 반납했다. 2년 6개월 준비 끝에 얻은 직장이었지만, “이 길은 아니다”라는 확신이 생겨서였다. 2년 4개월의 공무원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대부분은 민원인의 욕설이었다. 2021년 첫 근무지인 민원팀 근무 때부터 “쓸모없는 애를 왜 여기에 갖다놨느냐”는 말은 예사로 들었다. 지난해 초 과를 바꾼 뒤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첫 달엔 97시간, 다음 달엔 70시간 초과 근무에 시달려야 했다. 월급은 초과 수당을 포함해 250만원(수당 제외시 185만원). 그는 “일하다가 과호흡이 오고 일상생활이 안 됐다. 매일 울면서 출퇴근했다. 가드레일에 이대로 박고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회고했다.

A씨는 일본의 한 호텔에 취업해 일하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아깝지 않냐'고 했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진 A씨 제공

A씨는 퇴직을 결행하고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자신의 유튜브에 기록했다.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공무원의 현실을 폭로했다. 현재 홋카이도의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A씨는 “주변에서 ‘아깝지 않냐’는 말을 들었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공무원 그만두면 불행해진다는 ‘공스라이팅(공무원+가스라이팅)’을 겪는 사람들에게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전하고 싶어 유튜브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셜미디어에서 ‘#공무원퇴사’ ‘#의원면직’ 브이로그(일상 공유 동영상)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공직을 떠난 이유나 힘들었던 일화, 퇴직 이후의 행보 등이 유튜브에 공유돼 있다. 지난 2022년 국가직으로 입직해 8개월 만에 그만둔 한 유튜버는 “각 급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돼있고, 인수인계 없이 업무에 바로 던져졌다”며 “또 과한 의전을 보며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젊은 공무원들이 일을 그만둔 이유와 이후의 근황 등을 올리는 '의원면직 브이로그'가 화제다. 사진 유튜브 캡쳐

‘젊공’(젊은 공무원)들의 정부 엑소더스(대탈출)가 가속화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근속 5년 미만 공무원 퇴직자는 2018년 5670명에서 2023년 1만3566명으로 5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해 임용되자마자 그만둔 1년 내 퇴직자는 3020명에 달했다.

김영옥 기자

중앙일보가 최근 5년 사이 퇴직한 젊은 공무원(근속연수 5년 이하) 30명을 대상으로 퇴직 이유를 조사했더니 ①낮은 보수(21명) ②조직 문화(20명) ③악성 민원 등 과다한 업무(15명) 순으로 퇴직 사유를 밝혔다(중복 응답 포함). 이들은 공무원 시험 준비에 평균 17개월을 썼고 합격 이후 평균 30개월을 일했다. 첫 월급과 퇴직 때 급여 차이는 평균 28만원이었다. 한 교육청에서 9급으로 근무했던 B(27)씨는 “(현재 급여로는) 나중에 자녀들이 원하는 만큼 공부시키지 못할 것 같아 사기업으로 이직했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공무원 9급 1호봉 월 기본급은 세전 187만 7000원이다. 여기에 정근수당(기본급 5%씩 연 2회) 등 각종 수당과 성과 상여금, 명절 휴가비 등을 반영하면 월 평균 급여는 250만원 내외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대기업 대졸 정규직 신입 초임 연봉은 세전 5084만원이었다. 최근 4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올해 공무원 초봉과 격차는 더 커진다.

인상률은 9급 1호봉 기준 최근 5년간 14.3%에 그쳤다. 김정인 수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는 군 병사 인상률(병장 기준 131%)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셈”이라며 “내년엔 군 병사 월급보다 낮아 사기가 꺾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방의 한 도청 9급 공무원 서모(28)씨도 “의식주가 공짜인 병장이 165만원(내일준비지원금 포함)을 받는데 190만원(기본급 기준)을 버니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가 온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젊공 퇴직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30명의 퇴직 이후 행적을 추적해보니, 급수 별로 특징이 나타났다. 5·7급의 경우 미취업자 7명 중 6명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하거나 준비 중이었다. 경제부처를 떠나 로스쿨에 진학한 C씨는 “공직적격성평가(PSAT)과 법학적성시험(LEET) 난이도는 비슷한데, 최종 합격 뒤 버는 월급 차이는 변호사 기준으로 6배는 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9급의 경우 취업준비를 한다고 응답한 경우(5명)가 가장 많았다.

정근영 디자이너
박경민 기자

새 직장을 찾은 이들은 대기업 및 중소기업 등 민간기업이 가장 많았고(8명), 이어 자영업(4명), 공기업·공공기관(2명) 순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데이터 관련 중소기업에 취업한 남모(26)씨는 “업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고, 성과 위주의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공직에 비해 발전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한국 청년들의 직업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한 것도 젊은 공무원의 조기 퇴직 배경으로 분석된다. 통계청이 만 13~34세 청년·청소년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직장을 조사한 결과 지난 2009년엔 1위 국가기관(28.6%), 2위 공기업(17.6%) 3위 대기업(17.1%) 순이었지만 지난해엔 1위 대기업(27.4%), 2위 공기업(18.2%), 3위 국가기관(16.2%) 순으로 뒤집혔다.

김영희 디자이너

올해 9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은 21.8대 1로 3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23일 전국 17개 시·도에서 치러진 9급 공채 필기시험 응시율도 75.8%로 3년새 최저치를 기록했다. 5급 공채(옛 행정·외무고시) 경쟁률 역시 35.1대 1로 최근 5년 중 가장 낮았다. 이는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해 하반기 500대 기업을 조사한 대졸 채용 경쟁률(81대 1)의 절반 이하다.

최병윤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입직 경쟁은 여전히 높아 보이지만, 최근 몇년 사이 경쟁률이 급감한 건 낮은 임금, 위계적인 조직 문화, 악성 민원 등 복합적인 이유로 직업적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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