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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대통령실 누리집 갈무리


권혁철 | 통일외교팀장

나는 여야 정권 교체기에 국방부 출입기자를 두차례 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3년가량, 문재인 정부 후반기인 2021년부터 지금까지다.

집권당이 보수정당으로 바뀌면 국방부의 정책도 돌변했다.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표현이 다시 들어갔다. 남북 화해협력에 대한 태도도 표변했다. 9·19 남북군사합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던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전방 지역에 대한 정찰감시가 제한된다는 이유로 9·19 군사합의 일부(비행금지구역) 효력을 정지시켰다.

정권 교체에 따른 국방부 정책의 변화는 문민통제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문민통제는 선출된 정치권력(대통령)이 국가안보를 주도하고 군은 군사작전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나는 정치 풍향계가 바뀌면 급변침하는 일부 인사의 언행을 보며 문민통제란 사회과학적 개념보다는 김수영의 ‘풀’이란 시가 먼저 떠올랐다. “…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노무현 정부 때 합참의장이었다. 2007년 6월 당시 김관진 합참의장과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전시작전권(전작권)을 2012년 4월17일 한국군으로 전환하기 위한 단계별 이행계획서에 서명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2월 국방부 장관 국회 인사청문회. 김관진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때 군은 전작권 전환에 반대했지만 “통수권의 강력한 지침에 의해 진행됐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 이에 대해 당시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김 후보자는 참여정부 말기 청와대 오찬 건배사에서 ‘전작권 환수에 전군이 힘을 모아 확실히 추진하겠다’라고 했던 분”이라고 꼬집었다.

국방부뿐만 아니라 통일부도 여야 정권 교체 때마다 이전 대북 정책을 스스로 부정하는 고초를 겪고 있다. 국방부는 국방 정책의 틀 자체를 통째로 갈아엎어야 했지만, 그래도 통일부는 통일 방안을 손대지 않아도 됐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 공식 통일 방안은 김영삼 대통령이 1994년 8월 광복절에 제시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다. 이는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고갱이를 계승했다. 지난 30년간 여야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정부 통일 방안이 바뀌지 않았다. 북한 문제를 두고 진보와 보수의 의견이 날카롭게 엇갈리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는 기적 같은 일이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끈질긴 생명력은 국민적 공감대와 초당적 지지가 원천이다. 노태우 정부는 군사정부가 독점했던 통일 논의를 민간에 개방하고 1988년에 250회에 걸친 세미나·간담회를 통해 학계·언론계·종교계·문화계·경제계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했다. 국회는 통일정책특별위원회를 둬 공청회와 간담회를 열고 재야·학생운동 세력의 의견까지 수렴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9년 9월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국회 특별연설을 통해 발표하며 “우리의 내부적인 이견과 갈등, 반목과 분열은 민주주의의 거대한 용광로 속에 녹여 무쇠와 같은 민족의 통일 의지를 창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삼 정부의 한완상 통일부총리는 1993년 5월 국회 보고에서 통일 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방안으로 정부와 국회의 협력, 시민단체와의 협력을 꼽았다.

지난 3·1절 기념사 뒤 대통령실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자유주의적 철학 비전이 누락됐다며 통일 방안을 손보겠다고 밝혔다. 특정 정권의 통일 방안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 방안이 되려면, 국회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한 초당적 지지, 국민적 공감대가 전제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는 만남 자체를 거부하고 비판적 시민사회를 반국가세력이라고 비난한다. 이런 상황에서 돌연 통일 방안을 수정·보완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자신감은 어디서 왔을까. 마치 미국에서 재택근무하며 아시안컵 우승을 장담했던 위르겐 클린스만 전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을 보는 것 같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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