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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수헌의 투자 ‘톡’
단군 이래 최대 횡령…상장폐지
내부통제 실패에도 대표직 유지
결국 미공개정보 이용 꼬리 밟혀
사익 추구 ‘도덕적 해이’ 끝판왕
서울 강서구에 있는 오스템임플란트 본사 모습. 연합뉴스

코스닥 상장기업이었던 오스템임플란트에서 2천억원이 넘는 횡령 사건이 발생한 게 2022년 초다. 초대형 악재로 임플란트 업계 대장주가 거래정지에 들어가고 상장폐지 심사를 받게 되자 투자자들은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재무관리팀장 이아무개씨가 단독으로, 그것도 1년 동안 무려 15차례에 걸쳐 단군 이래 최대(2215억원) 횡령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데 대해 기업 자금 담당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정도 수준의 대형 횡령사고가 터지면 최고경영자가 사임하는 게 일반적이고 정상적이다.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게 아니다. 내부통제 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데 대한 실체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을 경악하게 한 사고에도 대표이사가 자리를 유지하자 시장에서는 횡령에 이은 또 하나의 미스터리라는 말이 나왔다.

3천억 회사에서 “2천억 횡령 몰랐다”

그런데 이 회사의 대표이사가 수년 동안 내부 정보를 활용해 차명 주식거래를 해온 사실이 최근 금융당국 조사로 드러났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하여 사익을 편취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지난 13일 오스템임플란트 엄아무개 대표이사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의결했다.

혐의가 사실이라면 이 회사의 위에서는 최고경영자가 내부 정보로 사익을 챙기고 있었고, 아래에서는 재무관리자가 횡령으로 자기 배를 불리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많은 상장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리는 이러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와 내부통제 미비의 결합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사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2021년 10월로 가보자. 당시 개인 투자자 이아무개씨가 동진쎄미켐이라는 반도체 소재 기업의 지분을 7.62% 취득하였다고 공시했다. 놀랍게도 그는 1400억원어치의 주식을 단 하루 만에 주식시장에서 매수했다고 공시에서 밝혔다. 시장에서는 그를 ‘파주 슈퍼개미’(지분 공시에서 밝힌 주소지가 파주)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약 두달이 지난 2022년 초 오스템임플란트는 내부 직원이 1880억원에 이르는 횡령을 저지른 것 같다며, 경찰에 고소했다는 사실을 공시한다. 회사는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의 회계감사를 받던 중 이런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파주 슈퍼개미가 오스템임플란트 회삿돈을 횡령한 재무팀장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횡령 적발 직전 동진쎄미켐 주식을 매도한 재무팀장 이씨는 금괴를 대량 매입한 뒤 잠적했다가 며칠 만에 체포됐다.

2023년 1월 1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징역 35년형과 추징금 1151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중형 선고 이유 가운데 하나로 ‘출소 후 이익 향유’ 방지를 들었다. 재판부는 이씨가 장기 징역형의 선고를 감수하면서도 횡령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계속 보유할 방법을 모색했다고 판단하고, “법원으로서는 피고인을 어느 정도 장기로 복역하게 해야 당초 계획한 ‘출소 후 이익 향유’를 막을 수 있을 것인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올해 1월 항소심에서도 형량이 유지됐고 이씨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자금 관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횡령 적발 전 1년 동안 15차례나 수백억원의 뭉칫돈이 회사 계좌를 들락거리는데도 회사 내부의 그 누구도 이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다.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을 다 합친 총액이 3천억원을 오르내리는 회사에서 1년간 2천억원 횡령이 벌어질 정도로 내부통제가 엉망이었다면 최고경영자는 책임지고 사임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대표이사 엄씨는 2022년 한 매체 인터뷰에서 ‘회사가 왜 횡령을 몰랐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편집 프로그램으로 은행 잔고증명서를 위조해 인지하기 어려웠다. 지난 연말 회계서류를 전체적으로 점검하면서 정황을 포착했다.”

필자가 예전에 직원 10명이 안 되는 조그만 회사를 경영할 때도 회계 담당 직원으로부터 일일 자금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회사 계좌의 현금 보유고를 수시로 점검했던 기억이 있다. 은행 잔고증명을 위조해도 회사 계좌에 실제 그만큼의 현금이 있는지 없는지는 금세 알 수 있다. 증명서류를 조작하는 것이지 실제 현금 보유고를 속일 수는 없다. 설령 한두번 횡령이 가능할 수는 있다 하자. 1년 동안 매월 한차례 이상 자금을 빼돌리는 것을 몰랐던 이유로 은행 잔고증명 위조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나 비상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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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금감원 간부의 ‘보도 무마’ 회유

오스템임플란트 대주주는 횡령 사건 이후 보유 지분 대부분을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엄씨는 회사가 팔린 이후에도 대표이사 자리를 유지했다. 사모펀드 관계자는 “대주주가 엄씨 대표이사 유지를 지분 거래 조건으로 내걸어 이를 수용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는 이후 일반 주주들을 대상으로 주식을 공개매수해 회사를 상장폐지시켰다.

그렇게 증권시장에서 잊히는 듯했던 오스템임플란트에 대한 기억을 다시 소환한 것은 금융위원회다. 지난 13일 금융위원회는 ‘상장사 대표이사의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 적발’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 회사가 오스템임플란트라는 것이 매체 보도로 금방 시장에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대표이사 엄씨는 회계 부서로부터 내부 보고를 받은 과정에서 영업이익이 급등하고 당기순이익이 흑자전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이 정보가 공시되기 전 아내 및 지인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하여 주식을 사고팔면서 이익을 얻었다. 엄씨는 내부 정보를 이용한 차명거래를 수년 동안 지속했다. 금융당국은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지분소유상황 보고의무 등 엄씨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와 조사 결과를 증권선물위원회에 보고했다. 증선위는 당사자 소명과 심문을 거쳐 혐의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사건을 검찰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한 언론매체는 이번 사건을 취재하던 중 엄씨의 청탁을 받은 전직 금융감독원 간부 등으로부터 보도 무마 회유를 받았다고 한다. 최고경영자가 중요한 내부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행위는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일반 투자자들의 신뢰를 훼손하는 중대 위법행위다. 법원에서도 이런 유형의 범죄에 대해서는 양형기준을 강하게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금감원에서 중요한 업무를 담당했을 이 간부는 보도 무마가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 역시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그랬을까?

MTN 기업경제센터장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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