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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025학년도 대학별 정원 배분
교수들 "사람도, 시설도 감당 못 해"
"공장서 빵 만들듯 인력 확대 안 돼"
20일 정부의 의대 증원으로 기존 142명에서 200명으로 정원이 늘어난 전북대 의대 교수들이 대학본부 앞에서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공언대로 20일 의대 증원 인원 2,000명을 대학별로 배분했지만, 교수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특히 수도권에 비해 인력, 시설 등 여건이 크게 부족한 지방 의대들은 늘어난 인원을 감당하지 못해 교육의 질이 수십 년 전으로 후퇴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교육부는 이날 2025학년도 의대 학생 정원 대학별 배정 결과를 발표했다. 당장 내년부터 경기·인천 361명, 비수도권(지방) 1,639명의 의대생이 더 늘어난다. 서울권에는 한 명도 배정하지 않아 지방을 배려한 모양새로 비치지만, 정작 의대 교수들은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손사래 친다.

교육 공간을 확보하는 것부터 난관이다. 엄중식 가천대 의대 교수는 "(학생이 증가하면)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의대 연구실도 빼줘야 하고, 건물을 새로 짓거나 임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천대는 40명에서 130명으로 정원이 3배 이상 늘었다. 엄 교수는 "의학 교육은 이론뿐 아니라 실습도 중요해 해부학, 생리학, 생화학, 조직학 등 실험 실습 공간 및 장비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에 있는 인제대 의대 이종태 교수도 "의대 교육이 1990년대로 후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과거처럼 강의실만이 아닌 소그룹 토의실이나 대규모 컴퓨터 실습실도 있어야 하고, 해부할 사체도 그만큼 필요할 텐데 전혀 대응을 못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턴 나가기 전 대학 임상술기센터에서 연극배우들을 모의 환자로 모집하는데, 수요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한숨 쉬었다.

인력도 문제다. 가르쳐야 할 교수가 없다. 정원이 125명에서 150명으로 늘어난 광주 조선대 소속 이철갑 교수는 "수업을 분반해서 늘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조선대의 경우 이미 주 5일에 매일 8시간씩 과목당 연계된 교수들이 스케줄을 겨우 맞춰 수업에 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외래 진료와 수술, 연구도 해야 한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수업 확대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지방에 편중된 인원 배분 원칙도 잘못됐다고 입을 모았다. 엄 교수는 "한국에서 해부학을 가르칠 수 있는 교수는 대학당 4명 정도로 알고 있고, 기초학문 전공자도 연간 한두 명 나오면 다행"이라며 "기초학문 교수 인력이 가장 많은 서울권 대학은 증원을 안 하고, 교수 인력이 한참 부족한 지방 의대는 크게 늘리니 현실과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철갑 교수도 "실습도 시늉만 내는 등 교육 내용이 부실해질 게 뻔한데, 인프라를 갖출 장기적 안목 없이 정원만 늘렸다"고 비판했다.

교수들은 증원에 앞서 재정과 시간을 충분히 투자해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만드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 교수는 "보통 병원까지 3,000억 원가량 투입되는 의대를 10곳 넘게 한 번에 만드는 상황이 됐다"면서 "다른 학교에서 사람을 빼올 수도 없고, 어떻게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의대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입학부터 전문의 후 대학원 과정까지 20년 이상 걸린다. 이종태 교수는 "공장에서 빵을 찍어내듯 할 수 없는 게 인력 확보라 문제가 해결되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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