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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논설위원
지난해 11월 26일 대구 엑스코 오라토리움 홀. 1400석 규모의 객석이 꽉 찼다. 뒤편에 선 사람까지 합하면 약 1600명이 모였다. 명칭은 콘서트인데 무대에 연예인이 없었다. 출연진은 이준석과 ‘천아용인’.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우리의 고민’ 토크 콘서트였다. 경향 각지에서 기차, 고속버스로 갔다. ‘내 돈 내 표’로. 대다수가 젊은이였다. SNS에 참가 후기가 속속 올라왔다.

한 달 하고 하루 뒤 이 대표가 창당을 선언했다. 2주 만에 당원 5만 명이 모였다. 신당 홈페이지로 자원해 몰려갔다. 수십 년 된 정의당보다 당원이 많아졌다. 한국 정당사 초유의 일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양당 구도를 깰 제3의 정치세력 출현’. 이런 제목의 기사도 있었다.

청년이 목소리 내는 무대 만들고
그들의 자발적 참여 끌어냈으나
‘혼자 결정’ 정치로 실망감 안겨

개혁신당은 잇따라 정책을 내놨다. 5호가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였다. 찬반 논쟁이 뜨거웠다. ‘새 정치’ 열망의 크기에 걸맞은 멋진 공약은 아니었다. 그 앞 1∼4호도 귀에 확 꽂히지는 않았다. 지지자들은 더하고 빼는 변화가 아니라 곱하고 나누는 개혁을 기대했다.

1월 20일 개혁신당 창당대회. 이상한 분위기가 돌았다. 두 달 전 대구 콘서트처럼 작은 축제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고리타분한 정치 행사로 끝났다. 김종인 전 의원과 이낙연 전 총리가 축사를 맡았다. 조응천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등 당시엔 손님이었던 정치인들과 이준석 대표가 인사하는 모습이 부각됐다. 그들만의 잔치가 됐다. 무대에 선 청년이 “나는 왜 개혁신당 당원이 됐나”를 주제로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이 대표가 청년들의 희망으로 떠오른 것은 3년 전 이맘때다. 서울과 부산에서 시장을 새로 뽑는 장이 섰다. 일반 청년들이 유세차에 올랐다. 홍보 전략을 담당한 이 대표와 젊은 당직자들이 만든 선거운동이었다. 대학생이 연단에서 “오세훈 후보도 마음에 안 들지만”이라면서 연설을 했다. 뒤편의 오 후보는 빙긋이 웃었다. 학생, 취준생, 카페 사장 등이 “무너진 공정사회”를 큰 목소리로 비판했다. 4·7 보궐선거 당일에는 청년들이 투표소에 다녀왔음을 증명하는 ‘인증샷’이 SNS에 쏟아졌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듬해 3월 대선으로 흐름이 이어졌다. 이준석과 국민의힘, 그리고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젊은이들이 민주당을 곤혹스럽게 하는 사진과 영상을 만들어 퍼뜨렸다. 과거에는 보수 정당이 당하던 일이었다. 청년들이 부모와 애인을 설득하며 표를 모았다. 시킨 사람이 없고, 생기는 것도 없는데 열성이었다. 석 달 뒤 지방선거에서도 그랬다. 국민의힘의 3연승이었다.

이 대표가 개혁신당 홈페이지를 개설했다고 자랑할 때 당원들과 정책, 선거 전략, 정당 간 제휴, 공천 등의 주요 진로에 대해 논의할 플랫폼을 만든 줄 알았다. 그때까지 그가 이룬 정치적 성공에 수평적 소통과 청년들의 참여가 큰 몫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플랫폼 정당’을 만들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창당 10년 만에 다수당이 됐던 이탈리아 ‘오성운동’은 ‘루소’라는 이름의 온라인 커뮤니티로 총의를 모은다. 이 대표는 그러지 않았다. 혼자 ‘빅 텐트’를 쳤다가 금세 접었다. 당원들이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개혁신당이 창당대회를 준비하던 1월 중순 대만에서 총선이 치러졌다. 제3 세력인 민중당의 커원저 주석이 청년층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청년들의 주거 비용과 저임금 노동 문제에 집중했다. 대만 젊은이들이 유세장으로 몰려갔다. ‘고향 가서 투표’ 운동까지 벌어졌다. 민중당은 113석 중 8석을 차지해 의회 ‘캐스팅 보터’가 됐다.

정치개혁을 향한 청년들의 열의가 많이 식었다. 젊은이들이 조용해지니 선거판에 과거사 논쟁과 손가락질만 난무한다. 이 대표의 책임도 크다. 무대에 청년들을 세우고 그들의 동지 역할을 한, 자신의 성공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물론 그는 젊다. 그리고 4·10 총선까지 아직 시간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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