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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에서 횡행하던 언론인에 대한 테러는 군사독재로 접어들면서 오히려 자취를 감췄다. 국가기관이 직접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는 비판적인 기사나 칼럼을 쓴 기자를 직접 연행해 위협했고, 전두환의 국가안전기획부는 언론팀을 두어 사전에 관리했다. 굳이 ‘괴한’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다.

1988년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이었던 오홍근이 “허벅지에 칼 두 방”(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이렇게 말했는데, 실제로는 허벅지와 어깨에 각 한 번씩)을 맞았던 이른바 ‘정보사 언론테러 사건’은 형식으로는 직선제를 통해 뽑힌 민주정부였으나 내용으로는 군사정권의 연장이었던 노태우 정부의 과도기적 성격을 반영한다. 박정희의 강제연행도, 전두환의 사찰과 관리도 통하지 않게 된 민주화라는 시대적 배경과 수십년간 군사정권의 비호 아래 불법과 탈법의 유전자가 존재의 설계도처럼 새겨졌던 육군정보사령부라는 구시대 조직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다.

테러의 빌미가 됐던 오 부장의 칼럼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는 노태우 대통령이 지명한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 동의안 부결을 계기로 군부가 “사법부를 좌지우지하고자 했던 발상”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정보사 예하부대장이었던 이규홍 준장은 “대법원장 임명 파동과 대학생 총장실 난입 사건 등 사회의 모든 부조리와 악행이 군사문화의 뿌리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등 군을 매도한 데 분개하여” 부하 박철수 소령에게 “한번 혼내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국방부 수사 발표)

황상무 수석의 발언을 엠비시(MBC)가 보도하면서 ‘회칼 테러’로 알려졌지만, 당시 국방부는 범행에 사용된 칼이 부대에서 쓰던 길이 25㎝짜리 과도였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건 당시 오 부장의 주치의는 허벅지에 난 상처에 대해 “깊이 3㎝, 길이 20㎝로 과도에 의한 것으로 보기에는 정도가 심하다. 한번 찔러 십자형의 상처가 난 데 이어 위아래로 폭이 좁은 상처가 10㎝씩 난 것으로 보아 양날을 가진 예리한 흉기”라며 특수제작한 칼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군이 처음부터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던 점에 비추어 축소 발표는 충분히 의심할 만하다. 정보사는 범행에 동원된 차량을 변조하고 운행일지를 조작하기도 했다. 낯선 차량의 번호를 적어두었던 아파트 경비원(이명식)이 아니었다면 영구미제로 남을 뻔했다. 사건을 보고받고도 묵인하고 은폐하려 했던 정보사령관 이진백 소장을 비롯해 10명의 피의자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소장은 예편 후 대한중석광업 사장이 됐고, 이규홍 준장은 방위산업체 풍산의 상무이사가 되는 등 권력의 배려를 받았다.

“엠비시 잘 들어”로 시작한 황 수석의 발언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군사정권의 언론탄압 디엔에이(DNA)를 검사정권이 계승했기 때문이다. 다만 칼이 법으로 바뀌었을 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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