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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중앙대 명예교수·본사 칼럼니스트
비관적 반응들이 먼저 제기될 수 있다. 인공지능(AI)은 언젠가 인간 자율성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 아닌가? AI가 정치에 도입되면, 민주정치보다는 감시와 통제에 쓰이지 않을까? 다른 한편으로는 갑갑한 정치 현실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헛헛한 공상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4월 총선을 앞두고 AI 정치인의 가능성을 논해보려는 데에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첫째, 선거철 한국의 정당은 까마득한 절벽으로 추락하고 있다. 권력 다툼을 위해서라면 온갖 반칙, 위법, 떼법을 총동원하는 아수라장이 매일 매일 펼쳐지고 있다. 무언가 파괴적 혁신 없이는 정치의 타락은 스스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둘째, 챗GPT4, 소라, 코파일럿 등이 보여주듯 AI의 발전은 근대 산업혁명 이후 최대의 삶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일자리, 돌봄, 여가, 전쟁 등 모든 분야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오는 중이다.

선거철 정당의 타락이 도를 넘어
기성 정치에 파괴적 혁신이 필요
무감정 AI로 분노의 정치를 제어
AI로 반헌법과 반칙 걸러냈으면

그런데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의 선거-정당정치가 18~19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등장한 근대적 개인들의 건축물이라는 점을 돌아본다면, AI 혁명이 불러오는 인간 존재의 재설정은 결국 선거-정당정치의 본질적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 있다. 18세기 부르주아들이 열었던 ‘그들만의 민주주의’가 200여 년 만에 ‘모든 사람의 민주주의’로 진화했듯이, AI 혁명이 민주주의를 상상 너머의 세계로 끌어올릴 가능성도 꿈꾸어 볼 만하다.

#1. 이미 숱하게 지적되었지만, 4월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우리 정당들의 자멸적 행태부터 간단히 돌아보자. 다양한 비판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필자는 우리 정당정치의 타락을 주도하는 것은 정당을 장악한 포퓰리스트들과 이들을 열성적으로 뒷받침하는 정치 훌리건들이라고 본다.

포퓰리스트들은 여러 얼굴을 갖고 있지만, 공통적인 특성은 민주정치의 제도와 절차, 법치를 한없이 가볍게 여긴다는 점이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2024년 총선 지역구 획정의 법정 기한은 2023년 3월이었다. 다수당인 민주당은 2024년에 들어서야 마침내 준연동형 선거구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하였고 여야 정당들은 그제야 지역구 획정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누더기가 된 공천 과정, 여야 정당들의 위성정당 급조, 선거 이후 이들의 예정된 원대복귀 등은 제도와 절차가 이미 파산 지경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추락을 멈출 주도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파당적 훌리건으로 빠져들거나 무심한 방관자, 냉담자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결국 관습적 사고를 넘어서는 혁신, 파괴적 혁신만이 추락을 멈출 수 있다.

#2. 산업혁명에 먼저 성공하고 근대 민주주의의 외양을 갖추기 시작하던 18세기 영국인들에게 보통선거권은 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AI 정치인,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유권자와 의사소통, 정책 결정 과정 등에 데이터 처리와 연산 결과를 활용하는 AI와 인간 정치인이 결합한 AI-휴먼 정치인의 등장은 신기루처럼 들릴 수 있다.

허황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혁신 국가들은 이미 AI 정치실험에 나서고 있다. 뉴질랜드는 2022년 최초의 인공지능 정치인 SAM을 공개하였다. SAM은 방대한 역사 자료, 요즘 이슈들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들, 공공정보, 뉴스 등을 언어학습모델에 기반하여 취합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민들의 질문에 상시로 답하고 정책결정자들의 결정에 기초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숱한 난관이 있겠지만, AI-휴먼 정치인을 통해 적어도 두 가지의 혁신을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첫째, 감정과 편견, 증오에 사로잡힌 현대 정치의 종말. AI에게는 감정이 없다. 상대에 대한 적개심도, 우리 편에 대한 광적인 집착도 없다. 따라서 상대편에 대한 분노와 모욕으로 뒤범벅된 우리 정치에 AI의 무감정이 도입된다면 역설적으로 정치의 정화, 이성의 회복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를 AI 시대 정치 이성의 재규정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둘째, AI-휴먼 정치인에게 대한민국 헌법, 3·1 독립선언문, 국내외의 정치학 고전들을 학습시키고 이를 모든 정책 결정의 기반으로 삼게 한다. AI 에이전트가 모든 정책 결정을 기계적으로 헌법정신에 종속시키도록 설계된다면, 법치에 대한 조롱, 법치의 오남용은 줄어들지 않을까? 정리하자면, 18세기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수공업) 노동의 종말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기계를 다루고 통제하는 호모 테크니쿠스의 역량을 발휘하면서 오늘의 경제적 번영과 보편 민주주의를 일구어왔다.

AI가 주도하는 제2의 기계 시대 역시 많은 두려움을 자아내고 있지만, 이미 AI를 훈련하고 협력하는 흐름은 빅테크 사무실, 의약 실험실, 첨단 스마트 팩토리 등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마찬가지로 AI 정치인은 단순한 현실 도피용 꿈이 아니다. 여야 후보들보다는 나는 AI후보에게 투표하고 싶다.

장훈 중앙대 명예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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