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로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맨 가운데 생존에 필요한 ‘의식(衣食)’ 비용을 확 줄이면서도 학원·의료비는 더 쓴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 경쟁과 고령화 속에 교육·보건비 지출 구조조정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항목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의 지출목적별 물가지수 및 최종소비지출을 보면 가계는 주요 품목 대부분에서 소비를 줄였다. 지난해 4분기 기준 가계의 최종 소비지출은 263조795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 올랐는데, 같은 기간 품목별 물가 상승률은 3.4%였다. 지출액 오름폭이 물가 상승 폭보다 0.1% 포인트 낮은 것이다. 특정 품목 가격이 오른 것보다 지출액이 덜 올랐다면 그만큼 그 품목 소비를 줄였다는 의미가 된다. 물가가 비싸지면 소비량이 그대로여도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면 전체 지출 규모는 자연스레 커지기 때문이다.
높은 금리로 실질소득은 줄고 식료품 등 생필품 중심으로 높아진 고물가 상황에서 가계는 먹고, 입는 품목에서 주로 지갑을 닫았다. 식료품·비주류음료 등 먹거리의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4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6.6%였지만 지출 증감률은 1.2% 오르는 데 그쳤다.
의류, 신발 품목도 같은 기간 6.8% 올랐지만 지출 증감률은 그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가정용품 및 가사서비스 역시 물가는 4.8% 오른 반면 지출액은 2.1% 올랐다.
‘의식주(衣食住)’ 가운데 의·식은 모두 줄인 셈이다. 반면 임대료, 주택, 수도비 등 거주 관련 비용 지출은 증가했다. 주거비, 관리비 등은 가계에서 주로 고정비로 분류돼 지출을 유연하게 줄이기 어려워 금리 상승 등 충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이자비용과 전기료와 도시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은 가계가 선택적으로 줄일 수 없이 그대로 부담하는 셈이다. 실제 해당 품목의 물가 상승률(2.8%)은 지출액 상승률(3.3%)보다 낮았다.
병원비는 물가 상승률보다 지출액이 크게 증가한 품목이다. 의료보건 부문의 물가 상승률은 1.6%에 그쳤지만 지출액은 8배에 가까운 8.5%나 늘었다. 인구 고령화, 코로나바이러스 여진이 계속되면서 보건의료 비용이 전반적으로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교육비 지출액도 가계가 줄이지 못한 품목이었다. 교육 부문 물가 상승률은 1.9%로 지출액(4.6%) 오름폭보다 한참 뒤처졌다. 지난해 기준 초·중·고 사교육비가 3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할 정도로 여전히 교육비가 비싼 탓이다. 최근의 ‘의대 열풍’, 수능 ‘킬러문항(고난이도 문항)’ 배제 논란도 오히려 사교육 경쟁을 치열하게 해 교육비 지출을 늘린 것으로 분석됐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먹거리, 의류 등처럼 생존을 위한 비용을 최소화하는 반면 주거비처럼 불가피하거나 교육비 등 양보하기 어려운 대목에선 지출을 늘리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