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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운동 주짓수
하체관절 공격, 위험한 ‘레그록’
사정상 아직 배우지 못한 기술
남성과 스파링 과정에서 부상
양민영(오른쪽) 작가가 상대의 무릎 관절을 꺾는 기술인 니바를 시도하고 있다. 박종혁 제공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이에게도,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약점은 더욱 도드라진다. 우리는 이 불문율을 그리스 신화로 배웠다. 인간과 여신 사이에서 태어난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의 명장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파리스가 날린 화살이 발뒤꿈치를 관통하면서 죽음에 이른다.

반인반신인 성웅도 발목 때문에 쓰러지는데 평범한 40대 여성은 말할 것도 없다. 어느 날 스파링 중에 레그록(leg lock, 하체 관절을 공격하는 다양한 기술) 기술에 발목이 잡혔고 일주일 넘게 절뚝거렸다.

통증 느끼기도 전에 발목 인대 ‘뚝’

부상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레그록에 얽힌 열등감이었다. 고등학교 과정부터 수학을 포기하는 이른바 ‘수포자’가 대거 발생하듯 말하자면 나는 ‘레그록 포기자’다. 나름의 핑계가 없지 않은데 유독 이 기술과는 인연이 없었다. 주짓수를 처음 배운 해에는 단원 하나가 시험 범위에서 빠지듯 레그록이 훈련 과정에서 제외됐다. 다음 훈련이 돌아왔을 때는 시간이 부족해서 참여하지 못했고 그다음 기회는 도장을 옮기면서 날려버렸다. 교육 영상이나 유튜브를 보면서 독학하는 방법도 있으나 가뜩이나 어렵고 까다로운 기술을 혼자 익힐 정도의 열의는 없었다.(레그록이 아니어도 익혀야 할 기술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퍼플(승급 3단계)에 가까운 블루 벨트(2단계)가 되면서 더 이상 레그록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상대의 무릎과 발을 포기하면 공격할 포인트가 급감한다는 관장님의 말씀이 옳기 때문이다.

이런 푸념을 늘어놓으면 누군가는 레그록이 그렇게 대단한 기술이냐고 묻는다. 주짓수의 기본 원리가 다양한 기술로 목·어깨·팔꿈치·손목 등의 취약한 관절을 공격하는 거니까 하체 관절을 꺾는 기술이라고 해서 대단할 건 없다. 그러나 주짓수 수련자라면 레그록이 대단하지 않아도 특별하긴 하다고 답할 것이다.

레그록엔 다른 기술에는 없는 날카로움이 있다.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도와 만나는데 고대 유도는 지금의 형태와 비교할 수 없이 호전적이었다. 하체 관절을 비틀기에 좋은 기본자세이자 ‘타래’, ‘얽힌다’는 뜻의 아시가라미(Ashigarami) 포지션에서 기술이 제대로 들어가면 상대가 통증을 느끼기도 전에 무릎이나 발목 인대를 끊을 수 있는 게 레그록이다. 현대 유도는 하체 관절을 공격하는 기술을 모두 정리하며 메치기 기술 위주로 발전했고 이 위험한 기술은 고스란히 주짓수로 흘러들었다. 그래서 주짓수의 레그록은 날카롭고 강하고 위험하다. 나부터도 기술이 완전히 걸리지 않았는데도 발목을 잡히는 과정에서 이미 무리하게 꺾이면서 다쳤으니까.

그래서 레그록은 기술이 걸린 즉시 항복을 의미하는 탭을 쳐야 한다. 공격당하는 사람이 항복할 타이밍을 놓치고 공격을 시도한 사람이 계속 관절을 비틀면 크게 다친다. 주짓수 대회에서 초심자들은 레그록 기술을 쓸 수 없게 제한하는 것도 그래서다. 평소 도장에서 수련할 때도 레그록은 위험성을 아는 사람끼리만 주고받는 게 일반적이다. 이렇게 모두가 두려워하는 강하고 위험한 기술이라는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뒤집어 보면 그것을 제대로 휘어잡기만 하면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이를 일찌감치 알아챈 극성 마니아들은 이른바 ‘발성애자’라고 불리는 인터넷 밈까지 생산하며 기회만 되면 무조건 발부터 잡고 볼 정도로 레그록을 맹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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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보다 남성 수련자가 열광하는

레그록을 주짓수의 필살기로 끌어올린 이는 주짓수 지도자 존 다나허다. 그가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며 존경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레그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현대 주짓수를 완성했다는 데 있다. 존 다나허는 가드 포지션을 벗어나는 기술인 가드패스가 어려울 때나 가끔 쓰이던 레그록을 모든 주짓수 포지션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체계화했다. 그가 레그록 열풍을 주도하면서 수련자들이 현란하고 위협적인 특정 기술에만 심취하는 부작용이 있을 정도다.

레그록이 수련자들에게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건 분명하다. 그 즐거움을 나만 모르는 게 문제지만. 게다가 화이트 벨트(가장 초보 단계)를 메고도 거침없이 레그록을 시도하는 남성 관원들이 끊임없이 열등감을 자극했다. 주짓수를 수련하는 내내 이러한 구도에 너무나 익숙해졌다. 내가 조심하고 주저하느라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기술을 아무런 경계심이나 조심성 없이 일단 시도하고 보는 남성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을 느끼는 나.

나중에는 승급조차 크게 기쁘지 않을 정도로 석연찮은 감정이 쌓였다. 내가 불완전하다는 생각, 보란 듯이 나를 추월하는 수련 기간이 짧은 남성 수련자들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면 전보다 훨씬 좋아진 내 몸의 조절능력을 여전히 신뢰하지 못한다는 결론과 마주한다. 여성 수련자 중 남성들처럼 레그록을 좋아하는 이들이 드문 걸 보면 이는 혼자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보통 여성 수련자들은 서툰 기술로 상대를 다치게 할까 봐 레그록을 과감하게 시도하지 못한다. 반대로 남성 수련자들의 레그록 사랑은 유별나다. 자기 몸을 향한 신뢰 또한 숨 쉬듯 자연스럽다.

보호대를 착용하고 도장에 갔을 때 발목을 다치게 한 상대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스쳤다. 그는 완벽하지도 않은 기술 때문에 다친 걸 이해하지 못했고 오직 자신의 조절능력만 믿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멀쩡한 왼쪽 발목을 가리키며 “이 발목도 부러뜨릴 것 그랬다”는 농담을 건넸다. 센 척하려는 허세로 보였다.

힘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작용한다. 아니, 힘보다 더 이 법칙에 강하게 지배받는 건 없다. 힘에 있어서 가장 민감한 이들은 힘을 가졌고 힘을 쓰는 법을 아는 이들이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위악을 떨어서라도 약점을 가린다. 그 반대는 힘에 대한 인식조차 없고 무방비로 약점을 드러낸다. 그토록 레그록을 의식하는 것도 결국 힘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힘 앞에서는 한가지 생각뿐이다. 무리해서라도 사고 싶은 고가품처럼 위험하더라도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다는 것.

양민영 작가
사회적기업 운동친구의 대표이며 ‘운동하는 여자’를 썼다. 페미니즘과 여성의 운동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고, 못 하는 일에 도전하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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