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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임명만큼 갑작스러운 한마디‥"호주 출국, 따라가라"

지난 4일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갑작스러운 대사 임명부터 11일 호주 부임까지, 실로 긴박한 일주일이었습니다. 제가 속한 MBC 법조팀은 말 그대로 비상 상황이었습니다. 여러 달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취재해오며, 이 전 장관을 '키맨'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 장관은 7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자진 출석해 4시간 조사를 받았고 법무부는 긴급회의를 열어 출국금지 해제 방안을 의논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출국금지를 풀어줬습니다. 사실상 호주 부임 수순이란 관측이 나왔습니다. 주호주 한국대사관에서 새 대사 부임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포착됐습니다.

"개인적인 일정 있어? 해외 출장 좀 가야겠다."
"네!"

선배의 한 마디에 곧장 집으로 달려가 간단히 출장 짐을 챙겼습니다. 실제 출국까지 시간이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이 전 장관이 8일 한국을 떠날 예정이란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핵심 피의자인 이 전 장관에게 확인해야 할 내용이 많은데, 이렇게 떠난다니요.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 발표 직전, 대통령실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는지, 또 재검토 후 혐의자를 2명으로 줄인 과정에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저희는 물어야 했습니다. 출국길은 사실상 마지막 인터뷰 기회였습니다.



출국이 연기됐다고? 고통스러운 '뻗치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석 달째 출국금지 상태라는 MBC 보도 이후 부담스러웠는지, 이 전 장관이 8일 호주 시드니로 가려던 계획을 연기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날 혹시 몰라 항공권을 잡아둔 채, 하염없이 인천공항을 배회했습니다. 취재원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을 기자들 용어로 '뻗치기'라고 합니다. 기자들의 숙명이라고도 하죠. '뻗치기'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8일 허탕을 치고, 다음날인 9일 또다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어울리지 않는 양복 차림으로 출국장을 돌며 여행객 사이를 두리번거렸습니다. 반나절이 지났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뻗치기'도 실패였습니다. 도심보다 비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스스로 선물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왠지 입맛이 더 쓰게 느껴졌습니다.

[타임라인]

3월 4일 외교부,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호주 대사 임명
3월 6일 MBC "출국금지 상태" 보도
3월 7일 오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석 조사
3월 7일 오후 KBS "내일 출국" 보도
3월 8일 오전 KBS "출국 연기" 보도
3월 8일 오후 법무부, 출국금지 해제
3월 10일 오전 YTN "브리즈번으로 출국" 보도
3월 10일 오후 이종섭 전 장관 출국

다음날인 10일, 이번엔 이 전 장관이 호주 시드니가 아닌 브리즈번으로 출국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오후 7시 45분 대한항공 항공편이었습니다. 출장팀은 급히 항공권을 예매하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공항은 수많은 언론사로 장사진이었습니다. 이 전 장관이 공항에 대기 중인 취재진들에게 공식 입장을 발표할 거란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동료 기자에게 출국장 취재를 맡기고, 취재진은 수속을 밟아 오후 5시 반쯤 탑승동으로 진입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항공기 탑승 시작시각은 오후 7시 10분. 오후 7시가 다 됐는데도, 이 전 장관이 출국장에 나타나지 않은 겁니다. 통로마다 취재진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출국장에 기다리던 기자들이 웅성대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들어갔다', '직전에 올 것이다', '또 연기된 것 아니냐'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오후 7시 7분, 탑승 시작 직전 혹시 몰라 탑승구에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 눈에 그가 들어왔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이종섭 전 장관이 분명했습니다. 대사로 비즈니스 등급을 예매한 이 전 장관은 먼저 서둘러 탑승하려 했습니다. 묻고 싶은 건 많았지만, 주어진 시간이 짧아 마음이 급했습니다.

어떻게 취재진을 피해 들어왔는지부터 물었지만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는 답뿐이었습니다. 급히 이첩 보류 지시 직전 이뤄진 대통령실 통화에 대해, 누구와 통화했는지 물었습니다. '윗선'은 없다던 이전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꼭 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접촉한 게 없다"고만 답했습니다.

이 전 장관은 공수처에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했고, 법무부도 그의 약속을 이유로 들어 출국금지를 풀어줬습니다. 그러나 MBC 법조팀 취재결과 그가 공수처에 제출한 휴대전화는 채 상병 사건 이후 개통된 새 전화였습니다. "왜 바뀐 휴대전화를 냈는지"도 물었습니다. 명확한 답은 하지 않았습니다.

40여 초의 짧은 만남.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지만, 그는 그대로 항공기 안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브리즈번에서 다시 만난 이종섭‥"오느라 수고했다"

풀리지 않는 궁금증과 아쉬움을 갖고, 10여 분 뒤 취재진도 같은 항공기에 탑승했습니다. 그러나 취재진은 이코노미석, 이 전 장관은 비지니스석. 커튼으로 차단막이 쳐졌고, 저희는 이 전 장관의 뒷모습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승무원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습니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이 전 장관이 어디로 갈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곧바로 호주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 주호주 한국대사관이 있는 캔버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취재진은 이코노미석을 탑승한데다 주요 인물도 아닌 만큼, 외교관 여권을 쓰는 이 전 장관보다 입국 수속이 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속도전. 급히 캔버라행 비행기가 출발하는 탑승구로 뛰어갔습니다.

"몇 번이에요?"
"게이트 16번"

영상취재 기자와 함께 '헉헉'거리며 뛰어가, 탑승 시작 전에 간신히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 전 장관은 이번에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눈앞이 까맸습니다. 이대로 남은 질문들을 하지 못하는 걸까. 서울에서 취재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탑승 시간이 마감될 무렵 갑자기 이 전 장관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취재진을 마주한 이 전 장관은 "뭐 여기까지 오고 그랬냐"고 눙쳤습니다. 출국 당시보단 한결 여유로운 표정이었습니다. 다시 질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실제 촬영된 영상에 제가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잡혔더군요.

그러나 정식으로 인터뷰 해달라는 요청에 대해선 "여러 차례 입장을 얘기했다"며 거절하고는,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는 말만 남기고 곧바로 항공기로 들어갔습니다. 대통령실 통화는 누구와 한 건지, 다시 물었지만 이번엔 대답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20여 초에 불과한, 실로 허무한 재회였습니다. 준비한 질문들을 역시 하지 못했습니다. 좀 더 명확하게 질문하라는 선배의 불호령도 떨어졌습니다.



출근길 다시 잡은 질문 기회, "왜 이렇게 급하게‥"

다시 마음을 다잡은 취재팀은 다음 항공기를 타고 캔버라로 향했지만, 대사관에서 이 전 장관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현지 직원은 새 대사가 왔느냐는 질문에 그날은 캔버라 지역 휴일이라 출근하지 않았다고만 답했습니다. 속절없이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대치 않던 소득이 있었습니다. 대사관을 촬영하던 중 현지 경찰이 순찰하다 저희를 발견하고 다가왔습니다. 순간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혹시 뭘 잘못한 것은 아닐까, 짧은 영어로 대응할 수 있을까. 오만 생각이 드는 그때, 이 경찰관은 그냥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다며 취재진을 안심시켰습니다. 한국을 좋아한다는 그는, 조명이 부족해 촬영에 어려움을 겪던 취재팀에게 차량 헤드라이트를 비춰주는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새 대사를 취재한다는 말을 듣고 넌지시 이종섭 전 장관이 머물 대사관저의 위치를 짚어줬습니다.

이 전 장관이 실제 대사로 부임을 한 건지, 그래서 관저에 살고 있는 건지도 명확히 확인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출장팀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피곤한 몸이었지만 압박감에 번쩍 눈이 떠졌습니다. 출근길 인터뷰를 위해 아침 일찍 한국대사관저로 향했습니다. 혹시 아침 운동이라도 하러 나오진 않을까‥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1시간 반쯤이 지났을까. 오전 8시 45분, 마침내 파란색 외교관용 번호판이 달린 관용차 한 대가 대사관저로 들어갔습니다.

이 전 장관은 차량이 도착하자마자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차량에 바로 탑승했습니다. 찰나의 순간을 놓칠 순 없었습니다. 취재팀은 황급히 차량을 쫓아갔습니다. 주차장 출구 문이 서서히 열리며 차량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호주는 영국처럼 운전석이 우측에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습니다. 차량 오른쪽으로 다가갔지만 이 전 장관은 왼쪽 뒷좌석에 타고 있었습니다. 큰소리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사님, 이렇게 급하게 출국하신 이유가 뭐예요?"

차창 사이로 마주한 이 전 장관은 취재진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먼 쪽에 둔 채, 저희를 외면했고, 차량은 그대로 관저를 빠져나갔습니다. 급한 마음에 차량을 쫓아 뛰어갔지만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그 모습을 보고 차가 멈추지 않을까 아주 짧은 시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차량은 점점 속도를 내 멀어질 뿐이었습니다.



"대사님, 왜 끝까지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나요?"

사흘간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에도 제대로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피하는 걸까. 아쉬움에 이어 안타까움까지 들었습니다. 최고위 공직자에겐, 재임 기간 업무와 관련된 의혹을 제대로 국민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연락을 취했습니다. 대사관에도 다시 찾아갔습니다. 약속 없인 만날 수 없다는 차가운 답만 돌아왔습니다.

브리즈번 공항에서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하는 취재진에게 이 전 장관은 "이미 여러 차례 입장을 얘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뀐 휴대전화를 왜 냈는지, 업무 수첩은 왜 폐기했는지 제대로 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첩 보류 지시 직전 있었던 대통령실 통화에 대해선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대화를 나눴는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해병대 수사단이 맡았던 채 상병 사망 사건 조사를 국방부 조사본부에 재배당하는 과정에서, 왜 내부 반발에도 '재수사'가 아닌 '재검토'를 명령했는지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왜 이렇게 급하게 출국한 건지, 이렇게 대사로 부임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그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물어봐야 할 것들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15일 대통령실의 강경한 입장 발표 이후 일부 언론을 통해서만, 해명을 내놨습니다. 대통령실 통화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대사 부임을 비판하는 언론을 탓했습니다.

대사님, 다시 한번 요청드립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든 다 좋습니다.
인터뷰 한번 해주십시오.

◎관련기사 :
[단독] 이종섭 출국길 단독포착‥취재진 마주치자 "왜 이렇게까지‥"https://imnews.imbc.com/replay/2024/nwdesk/article/6578492_365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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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뭘 여기까지 왔어요?" 되물은 이종섭‥사실상 대사 부임https://imnews.imbc.com/replay/2024/nwdesk/article/6578857_365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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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종섭 첫 출근길도 묵묵부답‥"호주가 도피처냐" 반발https://imnews.imbc.com/replay/2024/nwdesk/article/6579224_365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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