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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12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출처: 연합뉴스)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

2010년 대지진으로 국토 전역이 파괴됐던 국가, 식량이 없어 진흙에 소금을 넣어 구워 먹는다는 최빈국이 이번엔 갱단 폭동으로 무법 천지가 됐습니다.

발단은 3년 전. 2021년 7월 현직 대통령이 외국 용병에게 암살된 이후 갱단 'G9'이 세력을 키우며 대통령 권한대행인 현직 아리엘 앙리 총리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G9의 수장은 전직 경찰입니다.

총리는 대선과 총선을 모두 미루고 버티다 이달 초 다국적군 파견을 요청하려 케냐를 방문했는데, 이 틈을 타 갱단이 교도소를 습격하고 수도 80%를 기습 점거하며 폭동이 시작됐습니다.

피해가 극심해지고 미국이 압박에 나서자 앙리 총리는 결국 11일 해외에서 사임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총리 사임에도 혼란은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음 권력을 누가 가질지를 두고 또 다른 혼란이 시작되는 단계입니다.

현지시각 4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공항 근처에서 총격을 피해 시민들이 달아나는 모습. (출처 : AP통신)

■ 권력 싸움 뛰어든 갱단, 길거리엔 시신이

무정부 상태에 갱단 폭동이 더해지며 현지는 무법천지입니다. 현지에 진입한 AP통신이 보내온 영상을 보면, 이틀 전까지도 수도 포르토프랭스 골목이나 도로에서 총격에 사망한 시신이 여러 구 발견됐습니다. 낮 기온 30도, 시민들은 코를 틀어쥐고 거리를 지나갑니다. 유탄을 맞아 다친 사람들은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걸어갑니다. 부서진 상점, 불탄 차들이 거리에 널려 있습니다.

갱단은 공항 점거도 시도했습니다. 해외 체류 중인 총리의 귀국길을 차단하는 겁니다. 공항 접근 자체가 위험해 사실상 항로가 막힌 셈이 됐습니다. 공장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한국 기업들도 입주한 국영 공단이 있습니다. 공단 근처까지 갱단의 폭력이 번진 건 전례 없다고 합니다.

섬유업체 '윌버스'의 아이티 법인장인 양희철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불안감이 느껴진다"며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지역에도 갱단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비교적 안전했던 공항 근처나 공단에까지 갱단 공격이 시작되자 "매우 큰 공포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웬만한 혼란에는 익숙했던 교민들도 이번엔 '다르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2010년부터 아이티를 37회 방문한 원승재 목사는 현지와 매일 연락을 주고 받는다며 "이전에는 안전했던 선교사 주거지까지 공격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원 목사가 받은 영상에는 총성과 혈흔, 화염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특히 외국인들은 마음 놓고 외출을 못 해 집에 발이 묶였습니다. 교민 지준구 씨는 "외출 못 나간지가 10일째"라고 했습니다. 야간 통행금지령이 계속되고 있고, 낮에도 거리가 텅 비어있다고 했습니다. 외출을 못 하니 식량도 기름도 구하기가 어려운데, 갱단이 현지 외국인을 사살하겠다고 밝혔단 소문이 돌면서 필수품 구매도 어렵다고 합니다.

2주 넘게 가동을 중단했던 공단은 이번 주부터 다시 문을 열었지만, 혼란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주초 총리 사임 발표 이후 모습을 감췄던 갱단이 13일 밤부터 일부 지역에서 폭력사태를 다시 일으켰다고 보도했습니다.

해외에서 사임을 발표한 현직 아리엘 앙리 총리. 그는 현재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서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

■ 1주일새 기름값 2배…"먹는 것부터 줄였다"

현지 물가도 크게 올랐습니다. 갱단이 항만과 도로를 점거하며 유통망이 마비되자 기름값부터 폭등했습니다. 현지 영자매체 아이티 타임즈에 따르면, 1갤런(3.8리터)에 5.66달러이던 기름값이 지난주 17달러를 기록했습니다. 2.5배 상승입니다. 매체와 인터뷰한 택시기사는 "기름이 부족해 운행시간을 줄여 소득이 줄었고, 이 때문에 기름과 식량을 못 사게 되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밝혔습니다.

구호시설 '아이티 꽃동네'의 최마지아 수녀는 "어디서 기름 판다고 하면 줄을 그렇게 길게 선다"며 "경유값은 똑같지만 재고가 없고, 휘발유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습니다. 갱단이 도로를 막고 통행료를 걷기 시작하자 소금값이 2배로 뛰는 등 다른 생필품도 이전보다 크게 비싸졌습니다. 소비자물가는 이미 2017년부터 매해 10%씩 오르다 2022년엔 34%까지 뛴 상태입니다.

■ 외교부 "유사시 철수계획 수립 완료"

정부는 아이티 정세를 주시하며 유사시 육로와 항로로 교민을 철수할 계획 수립을 완료했습니다. 아이티에 공관이 없어 옆 나라 도미니카 주재 한국대사관이 교민들에게 철수 계획을 미리 안내하고, 철수 의사 등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현 시점에서 당장 교민들을 모두 철수시키거나, 여행경보를 '철수 권고'(여행경보 3단계)에서 '여행 금지'(여행경보 4단계)로 올려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거로 전해집니다. 특히 '유사시' 계획이라고 강조하며, 철수 계획이 마치 당장 시행되는 것처럼 보도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현재 아이티에서 자국민을 빼내려는 국가가 없고, 섣불리 철수 계획을 가동할 경우 현지 갱단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거로 보입니다.

정부는 2021년 2월부터 아이티 전역에 '철수 권고' 경보를 유지 중입니다.

■ 국회의원도, 총리도 없는 무정부 상태... 미래는?

아이티는 안정될 수 있을까. 차기 권력 구도를 살펴봐야겠지만 현재로선 큰 기대를 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앙리 총리는 사임을 발표하며 일종의 임시정부 기구인 '과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과도위원 임명 후 임시총리 선출, 차기 대선 준비가 연이어 진행될 예정입니다.

앙리 총리는 선거 준비가 완료되면 물러나겠다면서도, 13일 과도위원 임명은 자신과 참모들이 해야 한다고 13일 CNN에 밝혔습니다. 이에 반대하는 갱단 G9 수장 셰리지에는 과도위원으로 거론되는 정치인들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G9 외에도 '펩G' 등 아이티 수도에 기반을 둔 갱단만 20여 개, 이들은 임시정부 구성과 차기 선거에 영향을 미치겠단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티에 경찰 1천 명을 보내려던 케냐는 총리 사임 결정 후 파견 계획을 보류했습니다. 아이티인들은 "케냐 경찰도 부패했는데 우리를 제대로 지켜주겠느냐"며 우려하고 있다고 현지 매체들은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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